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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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신감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의 한 장면이다. 북에서 온 군대의 ‘홍이포’가 왕의 행궁을 조준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기술이 전해진 여러 명을 살상할 수 있는 신병기였다.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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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고시
며칠 전 탈북자들을 돕는 목사를 만났다. 이 세상에서 수많은 처참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정말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묻는다고 했다. 목사는 비참한 삶의 마지막 기간이라도 회개하고 구원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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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방 변호사들
오랜 세월 시간을 함께 한 변호사 친구들이 역삼역 부근의 자그마한 참치 집에서 만났다. 육십대 중반인 지금은 모두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 변호사들이었다. 한 친구가 백세주를 한잔 입에 털어 넣고 나서 걸걸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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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의 꿈
젊은 시절 군판사를 몇 년 한 적이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형을 선고해야 하는데 밤이 늦도록 결정을 하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사건 기록들은 하나하나가 시험문제 같았다. 중형을 선고할 때면 막막하고 가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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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닥친 죽음들
LA의 어두운 밤길을 지친표정의 한 늙은 흑인 영감이 걷고 있었다. 그는 바퀴를 단 커다란 십자가를 어깨에 진 고행자였다. 물기로 축축한 아스팔트 바닥에 가로등의 불빛이 번들거렸다. 거리의 귀퉁이에 수상한 느낌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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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
연남동의 골목길에 동네시장이 섰다.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내다 놓기도 하고 주부들이 틈틈이 익힌 기술로 만든 공예품들이 좌판위에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 옆에 있던 한 여성이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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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부자의 이심전심(以心傳心)
1996년8월26일 오후 2시경 대통령에게 돈을 준 죄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게 징역3년이 선고됐다. 그리고 21년이 흘렀다. 같은 법원의 법정에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한 이재용부회장에게 대통령에게 돈을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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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무능
8월말의 습기 찬 무더운 날이다. 하늘을 덮은 회색 구름속에서 이따금씩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스르릉’하고 금속음을 내면서 열리는 구치소철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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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실 교도관
변호사로 이따금 검사실조사에 입회하러 가는 경우가 있다. 검사실 구석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루 종일 구석에 정물같이 앉아 있는 존재가 있다. 피의자를 호송해온 교도관이다. 오랫동안 지켜보면 그런 교도관의 존재는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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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피가루에 황설탕을 버무린 도너츠
화요일의 조용한 저녁이다. 신사동에 있는 만두집에서 ‘샤오롱빠오’로 배를 채우고 근처에서 까페를 하는 어린 시절의 친구를 찾아갔다. 점점 메뉴가 늘어가고 있었다. 커피와 조각 케익으로 시작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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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취 나는 추물입니다.
광화문에서 볼일이 있을 때면 나는 일이 끝난 후 청계천을 산책하곤 한다. 종착지는 동묘 옆 벼룩시장의 헌책방이다. 그날도 헌책방 앞 좌판에는 쓰레기 더미 같이 쌓아놓은 천원짜리 책들이 있었다. 헌 책방에서도 제일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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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가 꿈꾼 세상
4.19당시 나의 아버지는 조선일보 사진기자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양철쟁반위에 김치와 함께 놓인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혼잣말 같이 고백을 하던 말을 지금도 기억한다. “광화문에서 데모대를 취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