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의원들이 9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수용 및 국정감사 정상화 촉구 의원총회에서 결의문을 낭독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더민주 비노 진영의 딜레마는 역설적으로 ‘문재인’에 있다. 문재인 전 대표를 강하게 비토하면서도 그를 대신할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올해 줄곧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것이 유력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과 지지율 1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문 전 대표를 지원하는 친노 진영은 지난 4월 총선을 거치며 당을 장악했다. 이는 8월 27일 전당대회에서 친노 지지를 받은 추미애 대표 당선으로 입증됐다. 특히 친노 중에서도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친문계의 세가 탄탄한 상황이다. 적어도 당내에선 대선 후보로서의 문 전 대표 입지가 공고한 셈이다.
그러나 문 전 대표를 바라보는 비노 의원들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난 4월 총선 당시 호남 지역 의원들이 집단 탈당, 국민의당으로 입당할 당시 대다수 비노 의원들이 장고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탈당이라는 모험보단 제1야당이라는 우산을 택했다. 그 결과 배지를 달긴 했지만, 친노 패권주의라는 장벽 앞에 좌절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비노 의원들은 향후 거취를 놓고 다양한 논의를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배경엔 문 전 대표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또 친노계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하고 있다. 한 비노계 초선 의원은 “대선 승리라는 절대 과제 앞에 하나로 뭉쳐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꼭 문재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문 전 대표 외엔 얘기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라면서 “그냥 친노가, 문 전 대표가 싫다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싫다는 데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총선을 치르면서 2선으로 물러났던 문 전 대표는 정중동 모드를 깨고 9월 6일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 문 전 대표는 대선 싱크탱크 역할을 맡을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심포지엄에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은 완전히 실패했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실패로 ‘대한민국 굴욕의 10년’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모두의 바람은 한결같이 정권교체”라며 사실상 대권 출사표를 던졌다.
이를 전후로 비노 진영 움직임도 빨라지는 모습이다. 특히 중진급 의원이 포함된 10여 명의 의원들은 비공개 모임을 여러 차례 갖고, 탈당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끈다. 아직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 등은 정해지진 않았지만 더민주가 아닌 다른 소속으로 대선을 치른다는 대전제엔 공감대가 모아진 상태라고 한다. 빠르면 올해 연말 탈당 선언을 할 것이란 얘기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다음은 여기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A 의원 최측근의 말이다.
“9월 이후에 마포와 여의도 등지에서 서너 차례 만난 것으로 안다. 극비리에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보좌진 대동 없이 모였다. 대충 10여 명 정도가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지금의 ‘문재인 대세론’은 실체가 없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었다.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후보를 내기 위해 모든 길을 열어 놓았다. 다만,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최대한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비노계의 한 의원 역시 이러한 내용에 대해 시인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A 의원이 연락 업무 등을 맡으며 주도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서 보안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탈당으로 끝나는 게 아니지 않느냐. 그 후에 우리가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를 놓고 이견이 있다. 어찌됐건 (탈당을) 한다는 것은 거의 ‘팩트’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탈당파 의원들은 일단 당내 세 규합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탈당이 정계개편 태풍의 눈이 될지, 미풍에 그칠지는 어느 정도의 인원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A 의원 최측근은 “일단 30명이 목표다. 그 정도가 이탈하면 문재인 대세론은 깨진다. 그러면 원심력은 더욱 확장돼 (탈당 규모는) 더욱 많아질 수 있다. 최종적으로 야권의 대선 판도는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와 대척점에 서 있는 김종인 전 대표를 비롯해 박영선·이종걸 전 원내대표 등 비노계 중진급 의원들이 가세할 경우 탈당의 파급력은 더욱 세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정계개편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전 대표의 존재는 탈당 이후를 감안하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각개전투를 벌이기보다는 김 전 대표를 앞세워 ‘단일대오’를 이룬다면 그 효과가 배가 될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아직 탈당 논의가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 정치 전문가들은 여러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우선 신당 창당. 더민주 탈당파들이 신당을 창당한 뒤, 그 후에 벌어질 정계개편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당 차원에서 움직여야 주도권 싸움에서 유리하다. 현역 의원 10여 명 이상이 만든 당이라면 순식간에 제4당으로 올라선다. 여차하면 국민의당을 위협할 수도 있다. 무소속보다는 정치적 운신의 폭이 넓다”고 설명했다.
신당 창당은 범야권에서 모색되고 있는 제3지대론과도 맞물린다. 새누리의 친박, 더민주의 친노를 제외한 비주류 인사들이 참여해 만든 새로운 정당에 더민주 탈당파들도 합류한다는 것이다. 여권의 유승민 의원, 장외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등 여야 거물급 인사들도 제3지대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더민주 탈당파까지 가세하는 신당은 대선 레이스의 최대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탈당파가 국민의당에 입당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지만 앞서 언급된 비노계 의원은 “탈당해서 기존 정당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선을 그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