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기각을 촉구하는 친박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지난달 24일과 26일 극우단체 소속의 일부 회원들이 박영수 특검 자택 앞에서 야구방망이를 동원해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이 XX들은 몽둥이 맛을 봐야 한다”며 물리적인 충돌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는 ‘신의 한 수’라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자택주소와 단골 미용실, 슈퍼마켓의 상호까지 공개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회원들은 박 특검이나 이 권한대행의 집을 찾아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주적’으로 삼고 있는 두 사람의 주소가 공개된 상황에서 ‘과격한 발언’에 힘을 입은 회원들이 언제 자신의 발언을 행동으로 옮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같은 시기 박사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한 20대 남성이 “저는 이제 살 만큼 살았습니다. 나라를 구할 수만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라며 이 권한대행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올렸다가 경찰의 수사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 만에 자수했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장난으로 글을 올렸을 뿐 실행할 의도는 없었다”라며 한사코 범행 가능성을 부인했다. 하루 만에 경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긴 했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경찰 측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선고 기일을 앞두고 박사모 등 각종 극우단체의 행동이 더욱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이 박사모 온라인 홈페이지에 탄핵 인용 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암시한 글을 남겨 논란을 일으켰다. 정 대변인은 이 글을 통해 “헌재 선고일, 국민 축제를 위해 탄기국이 가진 모든 자원을 쏟아 부을 것”이라며 “(모인 사람들은)각자 혁명 주체 세력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제일 앞에는 제가 설 것입니다. 저는 비록 아이들이 아직 어리지만 살 만큼 살았습니다”라고 덧붙여 극단적인 행동을 계획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이 글에는 회원들이 “주동자가 아닌 열사가 돼 죽기를 각오하고 행동할 것” “목숨 걸고 동참하겠다”는 댓글을 달아 탄핵 선고 당일 대규모 테러나 자해행위 등 폭력 사태가 발생할 것이란 의혹을 더욱 높였다.
탄핵 찬성 시위 측에 대한 폭력이나 기물파손 등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단체들의 암살이나 할복 등 극심한 자해행위 같은 과격 발언이 실천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없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헌재 및 특검 관계자들이나 탄핵 찬성 정치인들에 대한 이들의 발언을 예의주시하면서 그 ‘실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수사할 방침을 밝혔다. 더 이상 ‘협박 발언’을 실현 계획 없는 단순한 발언이라는 이유만으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커뮤니티에 등장한 탄핵죽창. 이 글을 올린 회원은 “(탄핵 선고 당일)돌발상황시 들겠다”라고 밝혔다. 사진 박사모 커뮤니티 갭처
한 경찰 관계자는 “현재 동시다발적으로 게시되고 있는 테러 예고나 폭력적인 행동을 장려하는 글은 그 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시위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라며 “글쓴이가 직접 행동에 옮기지 않더라도 글을 본 사람들이 단체 행동에 고양돼서 실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극우단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이런 글들에는 “함께 하겠다” “어차피 오래 산 목숨 정의를 위해 바치겠다”라며 동조하거나 직접 행동을 함께할 의향을 밝힌 댓글이 줄을 이었다. 경찰은 이 점에 집중해 협박문이나 폭력적 단체 행동 장려 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되더라도 커뮤니티 내의 분위기도 함께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처럼 격렬해지고 있는 극우단체의 헌법재판관과 특검을 포함한 반대 세력에 대한 위협·협박 행위에 대한 법안도 발의됐다. 7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이날 열린 바른정당 탄핵정국 비상시국 의원총회에서 “최근 헌재 탄핵심판 자체가 불법이라며 헌법재판관을 체포하겠다는 체포조가 등장하는 등 헌재 흔들기, 대한민국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라며 개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현행법에서 공무원에 대한 협박·위협(공무집행방해)의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 ‘헌재존중법’에는 협박·위협에 대해 현행법보다 2배 이상 가중처벌하는 벌칙 조항이 포함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