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의 법조&인생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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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몰랐어
며칠 전 부장판사를 지낸 친한 친구와 함께 점심을 했다. “판사는 누구를 첫 번째 부장으로 만나느냐가 중요해. 내가 처음 모신 부장은 법정에서 변호사나 당사자가 뭘 모르면 막 혼을 냈어. 배석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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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스의 고백
전국 조직폭력의 보스로 등극한 건달이 나의 법률사무소로 몇 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고급외제 승용차가 몇 대 따르고 그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주변에 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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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 아버지와 파출부엄마의 아들
9월이 마지막으로 가는 금요일의 오후 4시경이었다. 교대역 앞에 사무실이 있는 선배변호사 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젊은 변호사를 선발하는 면접을 하려고 하는데 함께 해 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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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글거리는 마네킹
변호사가 사무실에서 무릎을 꿇린 채 쌓인 책 더미 위에 고개를 묻고 죽어 있었다. 팬티차림에 양팔은 뒤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런데 그의 배 쪽의 살이 일부 잘려나간 처참한 죽음이었다. 변호사를 살해한 범인은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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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본질은?
서초동에 산지도 이십년이 다가온다. 냉냉한 도시 생활 속에서 그런대로 가까운 이웃도 생겼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십분 쯤 걸어가면 칠십대 중반의 언론인출신의 대학선배가 살고 있다. 그와 서울 고등학교 운동장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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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로 자유로운 인생 아닌가요?
장마비가 낮부터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일요일 밤이다. 아파트 창 아래로 보이는 아스팔트 도로가 검게 젖어 번들거린다.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간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나는 ‘TV다시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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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도 스킬이야 노력해야 해
동네교회에 몇 년을 나갔다. 거기서 칠십대 중반의 대학선배를 만나 친해졌다. 이웃사촌이라 이따금씩 만나 동네 공원을 함께 산책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그는 고교시절 문예 반장을 했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 기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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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선생님
북악스카이웨이 꼭대기 정자에 있는 레스트랑 구석의 탁자에 여든 살의 노스승과 예순 다섯 살의 제자가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이 처음 고등학교 1학년 영어선생으로 부임한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삼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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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 보셨어요?
터널이 붕괴되면서 그 안을 차를 몰고 가던 남자가 갇혀버렸다. 핸드폰으로 간신히 구조하러온 대원과 연락이 된다. 구조대원은 ‘긴급구조요령’이라는 매뉴얼을 보면서 터널 속의 남자에게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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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법관의 재판철학
참 이상한 판결문이었다. 노총각 의사가 평소 단골로 드나들던 까페 마담과 사귀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십여년이 흘렀다. 어느 날 병원장이 된 의사에게 인지소송이 걸려왔다. 까페 마담이 낳은 아이가 아버지를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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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들
9월초의 뜨거운 낮 열두시였다. 정자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분당서울대병원 고교동기 모친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녹음이 짙은 숲속에 들어앉은 붉은 벽돌의 빌라들이 마치 노련의 평안한 삶같이 느껴졌다. 잠시 후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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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뭐”
변호사를 개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업을 하는 친구가 찾아와 보증을 부탁했다. 거절하기 힘든 입장이었다. 내가 힘들 때 그 친구는 여기저기 다니며 돈을 만들어 한밤중에 찾아와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