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 엔진을 장착한 페라리 엔트리급 모델 ‘캘리포니아T’ 주행 모습.
터보 엔진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전세계적인 환경 규제 강화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배기량을 줄이는 것이다. 엔진 다운사이징이라 불린다. 그렇다고 성능이 떨어져서는 안된다. 싼 휘발유 가격으로 큰 배기량 자동차를 선호하는 미국과 자동차의 배기량과 크기가 신분의 상징인 우리나라 같은 나라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 어렵다. 또 기술적 문제도 있었다. 엔진 다운사이징의 핵심은 터보 기술이다. 그런데 터보엔진은 터보랙이라는 고질적인 성능 문제가 있었고, 내구성 면에서도 슬러지 문제 등으로 스포츠카를 제외한 일반용 차량에서는 그리 널리 쓰이지 못했다.
그러나 높아진 기름값과 전세계의 환경 규제 강화가 겹치면서 어떻게든 연비는 높이고 배출가스는 줄이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또 터보의 여러 문제점은 기술 발전으로 어느 정도 극복되고 있어 엔진 다운사이징이 유럽의 자동차 제조사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폴크스바겐은 골프의 2.0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1.4 가솔린 트윈차저 엔진으로 바꾸며 엔진 다운사이징의 물꼬를 텄다. BMW 역시 3.0 N55와 2.0 N20 트윈파워 터보엔진을 필두로 전 차종에 터보엔진을 적용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마찬가지다.
터보 엔진의 위세는 슈퍼카 시장을 이끄는 페라리마저 바꿔놓았다. 페라리 엔트리급 모델 ‘캘리포니아T’에 터보 엔진을 사용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신차 라인업에는 자연흡기 차량이 없고 모두 터보다. 터보는 공기를 압축시켜 엔진 속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주행 중 발생하는 배기가스 에너지를 회수해 터빈을 돌려 공기를 압축한 뒤 다시 엔진에 밀어 넣는 방식이라 폭발력이 높다. 작은 엔진으로도 전과 비슷한 출력을 낼 수 있는 이유다.
BMW 트윈파워 터보엔진.
그러나 엔진에 부담을 주는 터보를 쓰는 방식인 만큼 관리에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기존 자연흡기 방식에 비해 엔진오일에 민감하다. 상대적으로 고품질, 고점도의 엔진오일을, 그것도 자주 교환해야 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지난 2011년 YF쏘나타 터보를 시작으로 제네시스 쿠페, 벨로스터, K3쿱 등 주로 준중형 차량에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어 강력한 성능을 제공해왔다. 하반기에는 다운사이징된 1.6리터급 쏘나타 터보 출시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아차는 레이, 모닝 등 경차를 중심으로 ‘터보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 레이는 유가 하락이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판매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총 판매량 1만 6984대 가운데 10.6%에 머물던 레이 터보 모델 비중은 하반기 15.1%까지 상승했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기아차는 기존 가솔린 엔진보다 35% 이상 향상된 출력으로 오르막길이나 고속주행에 강한 ‘더 뉴 모닝 터보(TCI)’를 출시해 기존 제품군에 터보 모델을 추가했다.
오는 4월 서울모터쇼에서 신형 스파크를 처음 공개하는 한국GM도 기존 가솔린 모델에 터보 모델을 새롭게 추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은 그동안 트랙스, 크루즈, 아베오 등 전 제품군에 걸쳐 잇따라 터보 모델을 선보여 왔다.
한편 터보엔진이 대중화되면 우리나라 지자체는 세수가 줄어들 전망이다. 엔진 배기량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걷기 때문. 환경에 좋은 엔진 다운사이징을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환영하기에는 지방재정이 걱정스러운 까닭이다. 현대차 쏘나타 2.0ℓ(1999㏄)가 다운사이징돼 1.6ℓ 터보엔진으로 바뀌면 신차 기준 연간 자동차세는 각각 39만 9800원, 32만 3600원으로 7만 원 이상 줄어든다.
터보 엔진의 대중화는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를 불합리한 제도로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대부분이 적용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른 과세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연비가 나쁜 차는 기름값에 세금까지 많이 내는 최악의 차가 돼 소비자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질 것이다.
이정수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