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 가사다. ‘여자’를 ‘자동차’로 바꿔도 말이 통한다.
“전면부가 예쁘다고 자동차가 아냐. 엔진이 좋아서도 자동차가 아냐. 난 하나가 더 있어.”
박진영 노래에서 ‘하나 더’는 몸매를 말하는데, 자동차에서도 역시 ‘보디라인’이 중요하다. 일반인들에게 자동차를 구분 짓는 디자인 요소라고 하면 대부분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있는 전면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지난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전문가들의 눈에는 비례가 더 중요하다.
현대자동차 ‘EQ900’은 전면부는 신형 BMW 7시리즈를, 후면부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를 닮았다.
현대자동차 쏘나타와 기아자동차 K5는 유전자에 해당하는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쌍둥이다. 그럼에도 다른 차처럼 느껴지는 것은 외관 디자인 때문이다. 단순히 얼굴만 다른 것이 아니라, 비례에서도 차이가 난다.
2010년 YF 쏘나타 이후 현대차는 ‘숏 후드’ 즉 짧은 보닛과 반달 모양의 루프라인을 추구했다. A필러 시작점이 앞 도어 절개부위보다 앞에서 시작돼 C필러가 트렁크를 거의 덮는 스타일은 이후 그랜저(HG), 아반떼(MD) 그리고 LF 쏘나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스타일의 특징은 전면부에서 라디에이터 그릴과 후드가 각이 생기지 않도록 부드럽게 이어지는 데 있다. 어찌 보면 후드를 짧게 만들 수밖에 없는 전륜구동(FF)의 한계를 감안하면 이런 식의 숏 후드 스타일은 썩 괜찮은 선택이다.
반면 2010년 나온 K5는 YF 쏘나타와 동일한 하부 뼈대를 공유하지만, 외관 디자인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A필러를 도어 절개부와 만나는 지점까지 최대한 뒤로 밀어내고, 라디에이터 그릴은 수직으로 세워 후드와 거의 직각으로 만나도록 했다. 루프라인 또한 물방울 모양처럼 앞이 두툼하고 뒤로 갈수록 얇아지는 모양새다. 후드가 길어 보이는 후륜구동(FR) 스타일을 추구한 것이다. FF임에도 앞바퀴를 비교적 도어 절개부와 멀리 떨어뜨리려 노력한 점도 눈에 띈다.
현대차 쏘나타(위)는 A필러가 도어 절개부보다 앞쪽으로 나와 있고(A), 후드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만나는 부분이 완만하게 이어진다(B). 루프라인도 앞뒤가 대칭 형태다. 반면 쌍둥이차인 기아차 K5는 A필러가 최대한 뒤로 물러나 있고(C), 후드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만나는 부분이 거의 직각이라 후드가 길어 보인다(D).
기아차는 최근 K7 풀 모델 체인지의 렌더링을 공개했다. 1세대 K5보다 앞서 나온 K7 최초 모델은 A필러를 최대한 뒤로 밀었지만, 라디에이터 그릴과 후드는 부드럽게 이어진다. 지금 보면 모양새가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후 K7 페이스리프트에서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수직으로 세우면서 FR 스타일링이 살아났다.
기아차는 1세대 K5에서 2세대로 넘어갈 때 디자인 변경을 최소화한 바 있다. 1세대 K5의 디자인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뼈대에 해당하는 섀시 구조와 재질이 통째로 바뀌었기 때문에 속은 완전히 새로운 차다. K7의 몸통 부분을 보면 신형 K5와 거의 흡사하다. K5가 기아차 디자인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아차 신형 K7 렌더링 이미지.
곧 출시될 K7은 기존의 점잖은 신사 느낌에서 맹렬한 야수로 바뀜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트렌드는 향후 K9의 변신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이제 3년차인 K9의 풀 모델 체인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아니면 판매 저조를 우려한 기아차 경영진이 결단을 내려야할지도 모른다.
최근 현대차는 고급차 브랜드로 제네시스를 선포한 이후의 첫 작품이자, 플래그십(Flagship·기함이란 뜻으로 메이커를 대표하는 초대형 차량)인 EQ900의 기자단 프리뷰(비공개 행사)에 이어 렌더링을 공개했다.
지난호에서 구형 제네시스가 FR임에도 불구하고 ‘덩치 큰 쏘나타’처럼 FF 스타일링 흔적이 남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후드가 짧은 데다 후드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각지지 않게 이어지고, 루프라인은 앞뒤가 대칭적인 모양을 이뤘다. 2009년 출시된 에쿠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고가 차량이다 보니 보수적인 고객층을 생각해야 했지만, 이미 독일차들은 초대형 세단에도 다이내믹을 추구하고 있다.
곧 출시될 EQ900은 기존 에쿠스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적극적인 FR 스타일링을 반영한 듯 보인다. 앞부분은 신형 제네시스에서도 봤듯이 육각형 방패 모양의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을 반영했고, 헤드램프 모양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후면부는 지금까지의 현대차에서 볼 수 없었던 모양새다. 대신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재규어 XJ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물론 현대차의 디자인 실력이면 비슷한 콘셉트를 차용하더라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녹여낼 것이다. 그럼에도 왜 전면부는 BMW의 다이내믹 스타일로, 후면부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클래식 스타일로 조합을 이뤘는지는 조금 의아한 부분이다.
우종국 한경비즈니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