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롯데그룹 본사와 신동빈 회장 집무실, 주요 계열사 등 17곳을 압수수색한 10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앞에 취재진이 몰려 검찰 수사관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검찰은 신격호·신동빈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 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룹이 소유한 부동산 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검찰은 롯데가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통해 수백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돈을 해외로 빼돌리거나 은닉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지난 13일 오너 일가의 ‘금고지기’로 지목된 롯데 비서실 소속 이 아무개 씨 등을 소환하며 수사에 의욕을 드러냈다. 다음날(14일)에는 롯데건설 등 계열사를 추가 압수수색하며 롯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롯데건설은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특혜 의혹이 불거진 ‘제2롯데월드 타워’ 시공사다.
앞서 검찰은 ‘제2롯데월드 타워 인허가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 실세 A 씨 등이 개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바 있다. 이번 수사 배경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선 이명박 정권 실세들을 조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일요신문> 취재 결과 이번 수사의 칼끝은 ‘죽은 권력’에 있지 않다. 오히려 ‘산 권력’을 향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수남 검찰총장과 ‘악연’이 있는 ‘친박 실세’ 최경환 의원이다.
최경환 의원이 4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20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한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최 의원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롯데 핵심 임원들과 2012년 11월 지역 기반 사모임인 ‘아너스클럽’을 설립한 바 있다. 아너스클럽 창립 멤버는 모두 대구고 출신이며, 재경동문회를 통해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원은 2012~2014년 대구고 재경동문회 회장을 지냈다. 이 동문회에 속한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레벨’ 맞는 사람끼리 다 어울리는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내가 보기에 ‘급’이 낮거나 위급하면 서로 도움은 주지 않았다. (이번 수사로) 선배들이 곤란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제41대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김수남 현 검찰총장(당시 대검 차장)은 박성재 현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경합했다. 검찰 내부에선 김 총장에 대한 우호적인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최 의원을 등에 업은 것으로 알려진 박 고검장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최 의원과 박 고검장은 대구고 동문이다.
당시 김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 측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유승민 의원과 친분설이 돌며 고비를 맞았다. 유 의원 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소문은 일파만파 퍼졌다. 김 총장 측은 이 같은 친분설을 퍼뜨린 진원지로 ‘대구고 라인’을 지목했다고 전해진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 총장은 참을성이 많은 스타일인데 (의도치 않게) 때가 온 것”이라며 “친박과 롯데의 ‘특수관계’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최 의원과의 인연으로 수사가 덮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현 AIIB 부총재)의 작심 폭로는 검찰의 나침반이 ‘최경환 라인’을 가리키고 있다는 의심을 높인다. 지난 8일 오전 홍 전 행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 부실 지원을 최경환 경제부총리, 안종범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후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반부패’ 수사를 공식화했다. 불과 이틀 사이(8~10일) 최경환과 관계된 두 거대 기업이 사정 대상에 오른 것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그간 ‘최경환 라인’의 권력 독점은 말이 많았다”며 “롯데 비자금 수사도 최 의원에 대한 견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하면 롯데에 대한 사정 배경에 최 의원을 밀어내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최 의원과 롯데를 연결짓는 해석에 대해 “100%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시중에 떠도는) 일방적인 추측에 불과하다”며 “기업 내부 비리를 밝히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고 특정인을 겨냥해 수사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한 여당 관계자는 “아직 청와대 실세 중의 실세는 ‘최’라며”며 “‘설계자’가 없는 한 검찰이 ‘최’를 연결지을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롯데 수사의 표면적인 방점은 그룹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규명에 찍힌다. 재계에 따르면 신 회장의 형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측은 검찰에 신 회장과 관계된 수사 핵심 정보를 제공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검찰은 롯데그룹 압수수색 과정에서 각 계열사마다 비밀문서가 있는 위치를 특정해 압수물을 확보했다. ‘내부 조력자’의 도움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신 회장의 처벌 가능성 및 수사 시점의 적절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검사 출신 한 야당 의원은 “예전부터 롯데에 대한 의혹이 많았음에도 수사하지 않고 있다가 이 시점에 칼을 뺐다는 것은 최근 불거진 법조인(홍만표·진경준) 비리를 덮겠다는 뜻으로 읽힌다”면서도 “검찰이 전면에 나선 만큼 일정 수준까지는 수사를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권 다른 관계자는 “신 회장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일본 롯데홀딩스를 돕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그런데 일각에선 정보 유출의 근원지로 검찰이 아닌 청와대를 꼽고 있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롯데 건은 올 초 세팅된 수사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반려해 압수수색 타이밍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또 한 관계자는 “자꾸 민감한 정보가 ‘위’로 새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한 관계자는 “확인하거나 알 수 없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검찰 안팎에선 ‘어려운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수사가 그룹 핵심 임원 선에서 정리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재계는 신 회장 편에 있던 롯데 핵심 임원으로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 소진세 롯데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이인원 롯데 정책본부장(부회장)을 꼽고 있다. 이들은 모두 검찰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다.
먼저 최 의원과 같은 아너스클럽 회원인 노병용 사장은 롯데 계열사 사장 가운데 최고참이며, 신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노 사장은 신 회장을 대신해 국회 국정감사장에 나가 ‘친일 논란’과 관련해 “롯데는 한국기업”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제2롯데월드 타워 건설을 진두지휘했으며, 롯데마트 영업본부장 재직 당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과실치사)로 지난 11일 구속됐다. 검찰은 노 사장을 불러 비자금 조성 여부를 캐묻을 방침이다.
역시 아너스클럽 회원인 소진세 단장은 그룹 컨트롤타워이자 비자금 관리 총책으로 지목된 정책본부의 ‘실세’다. 소 단장은 노 사장과 함께 제2롯데월드 타워 건설을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대관업무를 담당하며 그룹 내 궂은 일을 도맡아 온 소 단장은 신 회장의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소 단장은 현재 신 회장을 수행하며 해외에 체류 중이다.
‘좌병용·우진세’와 함께 신 회장을 보좌해 온 이인원 부회장은 롯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명실상부 그룹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수십 년간 신 총괄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그는 한때 ‘신격호의 복심’으로 불렸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신동빈의 남자’로 변신한 뒤에는 옛 ‘주군’과 거리를 두고 있다. 2007년부터 그룹 내 핵심사업을 총괄하고 있으며, 최 의원과는 고향(경북 경산) 선후배 사이다.
이 밖에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임원은 김창권 롯데자산개발 대표다. 롯데자산개발은 국내외 부동산 매매·개발·운영에 관한 업무를 다루기 때문에 오너 일가의 ‘비자금 저수지’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대표는 최 의원의 또 다른 ‘인맥 창구’인 연세대 동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 의원의 연대 인맥 또한 상당하다”며 “롯데 수사로 최 의원을 견제한다는 건 어찌 보면 맞는 해석이다. 또 재계 쪽에는 ‘앞으로 정부 말 잘 들으라’는 강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 측은 롯데 임원진과의 친분을 묻는 질문에 “이번 수사와 아무 관계없다. 우리 쪽 멘트는 절대 쓰지 말라”라고 답했다. 최 의원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편 롯데 측은 “수사를 받는 입장이라 할 말 없다”며 “최대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