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준 기자=화장품 로드샵을 찾은 남성들이 남성 화장품 코너에서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우리나라 남성들만큼 화장품을 많이 쓰는 나라는 없다. 오죽했으면, 몇 년 전 AP통신에서 ‘한국남자가 왜 이렇게 화장품을 많이 쓰는지’에 대해 뉴스로 다룬 적도 있다. 젊은 친구들은 눈 화장도 한다. 더 나아가 메이크업 샵이나 네일 샵을 이용하는 친구들도 있다. 이미 시장과 기업에선 이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
김주덕 교수가 기자에게 대뜸 던진 말이다.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 남성들은 화장품 구입비로만 월평균 45달러를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 세계에서도 1위에 해당한다. 또한 한국 남성 1인당 사용 화장품 품목은 폼 클렌저, 로션, 스킨 등을 포함해 약 7종으로 나타났다. 적잖은 숫자다.
추산 가능한 시장 규모도 만만찮다. 올 2월 발표한 2017년 기준 국내 남성화장품 시장 규모는 1조 원을 훨씬 상회한 1조 2800억 원으로 나타났다. 2009년 약 6000억 원의 규모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채 10년도 되지 않아 두 배 규모로 성장한 셈이다. 연 평균 10%의 고공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남성화장품 시장은 그 추세라면 2년 후인 2020년경 시장규모가 1조 4000억 원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화장은 더이상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항공사 남자직원들의 모습. 연합뉴스
그 품목도 늘어나는 추세다. 기존 폼 클렌저, 스킨, 로션 등을 주로 사용하던 남성들은 최근 선크림과 기능성 비비크림, 심지어 아이브로우 펜슬, 컨실러, 아이라이너와 같은 색조 제품도 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김 교수는 “예전 남성들은 주로 스킨, 로션만 일반적으로 사용했지만, 요즘 나이 드신 분들도 기본적으로 선크림은 바른다”라며 “최근엔 BB제품 등 남성들만의 기능성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그 가짓수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그루밍족’이란 신조어도 유행 중이다. 그루밍은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을 시키는 것에서 비롯됐다. 현대에선 의복과 두발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유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내에선 이를 어원 삼아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을 가리켜 ‘그루밍족’으로 부르고 있다.
출처=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 논문 ‘남성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 숫자는 응답자 수, 가로안 숫자는 백분율(%)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그루밍족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나이불문 국내 남성들 사이에서 외모 관리와 투자에 대한 관심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김주덕 교수의 최근 연구조사에선 이 같은 한국 남성들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 교수는 20~40대 각계각층 미혼 및 기혼 한국남성 296명을 대상으로 이와 관련한 연구조사를 실시했다.
일단 외모 관리에 대한 관심 정도를 묻는 질문에 조사 대상자 중 11.1%는 ‘매우 많다’고 답했으며, 29.7%는 ‘많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중 4명은 외모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연령층이 내려갈수록 그 관심도는 더욱 높아졌다.
출처=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 논문 ‘남성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 숫자는 응답자 수, 가로안 숫자는 백분율(%)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이와 함께 ‘외모 관리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선 조사 대상자 중 14.5%가 ‘매우 긍정적’이라 답했으며, 56.4%가 ‘긍정적’이라 답했다. 응답자 10명 중 무려 7명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긍정적인 답을 내놓은 셈이다. 이 조사에서도 역시 연령층이 내려갈수록 외모 관리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더욱 두드러졌다.
출처=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 논문 ‘남성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 숫자는 응답자 수, 가로안 숫자는 백분율(%)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더욱 흥미로운 것은 ‘외모 관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와 관련한 조사 결과였다. 이에 대해 응답자의 30.0%가 ‘경쟁력’이라 답했으며, 27.1%가 ‘자기 관리’라고 답했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남성들 역시 ‘외모’를 자기가 지닌 중요한 경쟁력이자 무기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출처=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 논문 ‘남성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 숫자는 응답자 수, 가로안 숫자는 백분율(%)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구체적인 사용 품목에 대한 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복수 응답을 허용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2%가 로션을 사용한다고 답했으며 49.2%가 스킨을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30.5%는 클렌징 제품을, 스킨로션 겸용(올인원)을 사용하는 응답자는 28.4%로 집계됐다. 여기에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한다는 응답자도 28.1%로 나타났다. 면도와 관련한 애프터 쉐이빙과 쉐이빙 크림을 사용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각각 24.4%와 22.7%로 집계됐다.
출처=김주덕 성신여자대학교 뷰티산업학과 교수 논문 ‘남성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 숫자는 응답자 수, 가로안 숫자는 백분율(%)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그렇다면 남성들은 어떻게 화장품을 구매하고 있을까. 남성들은 불과 10년 전만해도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낯설어 하거나 쭈뼛거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남성들은 달랐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3.0%가 본인이 직접 화장품을 구입한다고 답했다. 배우자나 애인이 구입해 준다고 답한 응답자는 35.8%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20대의 경우 본인이 구입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75.0%에 육박해 눈길을 끌었다.
김주덕 교수는 남성 화장품시장이 지닌 미래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사진=본인제공
그는 “한국 케이팝 열풍이 대단하다. 방탄소년단만 보더라도 이제 그들의 음악과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메이크업과 사용하는 화장품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라며 “또한 남성들의 화장품 소비 증가 추세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분명 수출 품목으로서도 남성 화장품은 성장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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