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보툴리눔 톡신 제제 메디톡신주를 개발한 메디톡스가 무허가 원액을 사용한 혐의가 드러나 흔들리고 있다. 2009년 코스닥 상장 당시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연합뉴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7일 약사법 위반으로 메디톡신주 50·100·150단위 등 3개 품목의 제조·판매·사용을 중지시키고,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했다. 메디톡스로부터 위반 경위 등에 대해 듣는 청문을 오는 5월 4일 연 뒤 내부 검토를 거쳐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메디톡스의 또 다른 보툴리눔 톡신 제제 이노톡스주에 대해서도 시험성적서 조작에 따른 제조정지 3개월 등 행정처분을 추가할 예정이다.
이는 식약처가 전 메디톡스 직원 3명으로부터 2019년 5월 메디톡스의 제조 및 품질 자료 조작에 대한 공익신고를 접수하면서 검찰 수사를 의뢰한 데 따른 결과다. 검찰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및 약사법 위반 혐의로 메디톡스와 정현호 대표, 공장장을 지난 17일 기소했다. 무허가 원액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원액 및 역가 정보를 조작해 국가출하승인을 받는 등 허가 내용과 원액의 허용 기준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근육경직 치료와 주름 개선 등에 사용하는 의약품이다. 상한 음식 등에서 생기는 보툴리눔 독을 정제해 원액으로 만들어 제조한다. 그러나 식약처 허가를 받은 2016년 당시 신고한 원액이 아닌 다른 원액으로 제조하고, 역가와 원액 정보를 조작해 국가출하승인을 받은 혐의가 전 직원들의 고발로 드러난 것. 역가는 적정에 사용하는 표준 용액의 작용 세기로 효능 강도를 뜻한다.
메디톡스는 지난 19일 대전지방법원에 식약처 명령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및 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또 공식 입장을 내고 “식약처 처분 근거 조항은 메디톡신주가 공중위생상의 위해를 초래한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된 제품 생산 기간은 2012년 12월부터 2015년 6월까지로 해당 시점에 생산된 메디톡신주는 오래 전 소진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현 시점에서 어떠한 공중위생상의 위해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현재 유통 가능한 메디톡신주는 2017년 4월 이후 제조된 것으로, 2016년과 2018년, 2019년 식약처 유통제품 수거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해명에도 식약처 처분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약사법 제71조에 따르면 허가받지 않은 성분의 의약품을 제조 판매한 경우 공중위생상의 위해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폐기하거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할 수 있다. 식약처 처분은 허가받지 않은 성분을 사용해 제품을 제조함으로써 약사법을 위반한 데 따른 것으로, 생산 기점과 위해성 여부는 이와 무관하다는 의견이 많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데이터 무결성은 의약품 품질관리 및 안전성 측면에서 항상 중요하다”며 “식약처 처분은 메디톡신주의 데이터 무결성을 훼손해 약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생산 시점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데이터 무결성은 원본 데이터의 변경·파괴 없이 보존되는 특성을 말한다.
민·형사와 행정소송 역시 제품의 위해성 유무와 관련이 없어 사측 주장은 소용이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법무법인 오킴스의 엄태섭 변호사는 “메디톡스는 마치 공중위생상의 위해를 초래해야만 처분이 정당화된다고 변명하지만 민·형사와 행정소송의 향방을 가를 쟁점은 품목 허가 내용이나 원액 역가 허용 기준을 위반해 의약품을 제조·판매해 약사법을 위반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했는지에 대한 것”이라며 “위해성 유무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다.
소액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등 후폭풍도 거세다. 엄태섭 변호사는 메디톡스 주식 투자자들을 대리해 메디톡스와 대표·부사장 등 임원들을 자본시장법상 공시 위반으로 지난 22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제출했다. 메디톡스가 무허가 원액을 이용한 제품 생산 등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며 허위 공시를 했고, 이 공시를 믿고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엄 변호사는 “메디톡스는 공중보건상 위해성이 없다지만 이는 쟁점이 아니다”며 “주주들은 2012~2015년 당시 식약처의 정상 승인을 거쳐 발매됐다고 발표된 공시를 믿고 투자했는데, 허위공시 문제는 배제하고 최근 제품에 문제없으니 괜찮다는 입장은 주주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노톡스 제조정지 3개월 행정처분이 예고됐으나 입장문에 해당 내용을 쏙 뺀 채 이노톡스를 통해 매출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며 “여전히 주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논란거리는 또 있다. 공익신고자들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제현의 구영신 변호사는 “메디톡신주의 품목 허가 과정에서도 안정성 시험 결과 등을 조작해 허가받았고, 허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무허가 원액을 사용하고 역가를 조작했다”며 “허가 당시 조작 등 문제점은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제기가 될 수 없었을 뿐”이라며 메디톡스 입장을 반박했다. 또 “메디톡신주는 무균시설에서 생산돼야 하는데 메디톡스는 2006년께 작업장이 오염된 사실을 알면서도 제품을 생산했다”며 “작업장 오염 문제를 해결했는지 조사와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메디톡스는 기업 이미지와 매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메디톡신주는 회사 주력 제품으로 약 60개국에 판매되고 있다. 코어톡스주와 시험성적서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이노톡스주는 차세대 제품군이다. 그룹 제품 3개 중 2개가 행정처분을 앞둔 만큼 현재와 미래성장 동력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역가 조작에, 오염된 작업장에서 생산한 데다 원액도 무허가로 밝혀지는 등 총체적 난국이 펼쳐졌다”며 “식약처도 리스크를 가져가기엔 부담스러운 만큼 허가 취소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여재천 사무국장도 “보톡스를 제조하는 회사가 많아졌고 시장도 잘 정착돼 있는데, 그 안에서 큰 점유율을 차지했던 메디톡스가 이번 사태로 신뢰가 깨진 만큼 기존 점유율을 유지하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메디톡스가 메디톡신주 제조 과정에서 무허가 원액을 사용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기업 이미지와 실적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주사기 이미지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일요신문DB
다만 이 같은 국내 상황이 메디톡스 해외 진출의 발목을 잡진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메디톡스는 현재 메디톡신주 중국 임상 3상을 마치고 중국의약품관리국(NMPA)의 허가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여 사무국장은 “미국과 중국 임상이나 해외 진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드물다. 국가마다 허가 기준에 따라 심사하는 절차를 거치기에 식약처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다른 국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다만 해외 임상시험에서 우리나라에서 시험한 데이터를 내는 만큼 식약처의 처분 사항을 참고는 할 수 있다”고 했다.
대웅제약과 보툴리눔 톡신 도용 소송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도 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톡신 제품 나보타를 개발하고자 보툴리늄 균주를 훔쳐갔다고 2016년 의혹을 제기하고, 이듬해 민사소송을 걸었다. 2019년에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대웅제약과 나보타의 미국 판매사인 에볼루스를 제소해 오는 6월 예비판결을 받는다. 엄 변호사는 “ITC는 도용 여부를 따지는 것으로 무허가 원액 사용 등 현재 불거진 문제와 무관하다”고 했다.
메디톡신주의 유해성 문제는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다만 제품의 역가를 조작했기 때문에 의사가 정해진 용법과 용량을 준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효능이 너무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언급된다.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보툴리눔 톡신은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살아 있는 세균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세균이 만들어낸 독소를 집어넣는 방식”이라며 “독소 자체는 증식되는 세균이 아니고 그걸 정제해서 제조한 만큼 무허가 원액을 사용했다고 인체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했다. 다만 “메디톡스는 독소를 적정량 투입하는 정도 관리를 하지 못해 제품마다 들어간 독소 양이 다른데도 이런 내용이 담긴 역가정보를 조작해 판매했다”며 “정도 관리가 안 된 제품을 쓰면 독소가 너무 적게 들어간 경우 효능이 떨어지고 많이 들어가면 심각한 마비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