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 표현에서 '스위트'는 입 안에 남은 당분의 점도를 뜻한다. 단것을 먹으면 입 안에서 끈적끈적함을 느낀다. 입 안의 당분은 점성을 가진 액상 상태로, 달콤한 수분을 오랫동안 느낄 수 있다. 드라이한 술은 그 반대다. 점도가 낮아 촉촉한 당분이 적은 상태로, 마실 때 입 안에 당분이 없어 마치 말라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즉 드라이하다는 말은 입 속의 당분이 말라 있다는 뜻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당분을 고체로 만들기가 지금만큼 용이하지 않았다. 자연 속 당분은 대부분 액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위트하다는 것은 입 안에 촉촉함이 있는 상태를 말했고, 반대말은 바로 다 말라버린 상태인 드라이가 된 것이다.
드라이라는 표현을 쓴 주류 제품으로는 '슈퍼 드라이'라는 맥주 등이 있으며, 우리 전통주에서는 '복순도가 슈퍼 드라이'가 있다. 송명섭 막걸리, 해창 막걸리 역시 드라이한 막걸리로 알려져 있다. 차가운 소주를 마시면 깔끔하다는 표현을 할 때가 있는데 드라이와 유사한 느낌이 있다. 차갑게 마시면 단맛도 덜 느끼기 때문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도 드라이하다고 표현한다. 이 표현도 일리가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으면 더 빨리 마르기 때문이다.
#바디감의 의미는?
한글로 해석하면 어색한 맛 표현이 또 있는데, '바디감'이 그렇다. '바디'(Body)가 느껴진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말 그대로 몸이 느껴진다는 것일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바디감이라는 말은 서양에는 없다. 영어인 바디(Body)와 한자인 느낄 감(感)의 조합이다.
간단히 말하면 바디는 밀도를 의미한다. 타닌이나 높은 알코올 도수를 통해 밀도가 느껴지는 와인을 몸이 꽉 차 있다는 '풀바디'(Full Body)라고 하고, 물처럼 가벼운 와인을 '라이트 바디'(Light body)라고 한다. 중간 것이 '미디엄 바디'(Medium Body)다. 바디감은 우유와 비교하면 딱 좋다. 풀바디 와인이 진한 우유라면 라이트 바디는 저지방 우유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바디감을 굳이 우리말로 바꾸자면 밀도감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직역하여 몸감이라고만 안 하면 충분하다.
#아로마와 부케
한글로 해석하면 애매하게 쓰이는 맛 표현은 또 있다. 와인을 마실 때 사용되는 아로마와 부케라는 단어다. 포도 특유의 열매에서 발효되며 나오는 향을 일반적으로 '아로마'(Aroma), 숙성된 향을 '부케'(Bouquet)라고 한다.
레드와인은 다양한 향이 느껴지는 주류다. 다양한 향이 느껴지는 이유는 포도 열매 외에 껍질, 줄기 등의 역할이 크다. 발효되면서 다양한 아로마를 풍기기 때문이다. 또 내부를 불로 구운 오크통에 숙성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구워진 나무에서 나오는 초콜릿, 바닐라, 견과류 등의 향을 느낄 수 있다. 미네랄이 풍부한 지역에서 나오는 포도는 살짝 짠맛이 돌기도 한다. 부케는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던지는 그 부케와 같은 뜻이다. 잘 숙성한 술의 향은 결혼식장의 부케와 같다는 의미다.
#술 마실 때 맛 품평이 중요한 까닭
한국의 술 문화는 '빨리 마시고 바로 취하는' 것이었다. '빨리빨리 문화'가 술에도 있었던 것. 대체로 한국인은 술을 마실 때 색을 보거나 향을 맡으면 '와인처럼 술을 마신다'며 어색해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골의 장독대에 묵혀놓은 간장을 꺼낼 때도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열듯 조심스레 옹기 뚜껑을 열며 잘 익었는지 색을 본다. 그리고 마치 와인을 돌리며 향을 맡듯 국자로 휘휘 돌려가며 손부채질을 통해 향을 맡는다. 괜찮으면 맛을 보며 손님에게 내놓을지 생각한다. 먼저 맛을 보고 손님에게 내놓는 문화다. 마치 와인 소믈리에가 하는 패턴과 같다.
결국 술 품평에 동서양은 공통점을 지닌다. 그만큼 하나를 먹고 마시더라고 따지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몸에 들어가는 만큼 까다로움이 필요하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다.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이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명욱 주류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