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타는 건 개인 투자자만 아니다. 국민연금은 전체 운용자산(953조 원)의 15%에 달하는 약 140조 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2022년 수익률은 –8.22%인데, 특히 국내 주식에서 –22.76%를 기록했다. 연금 고갈을 늦추는 것이 화두인 만큼 수익률이라도 선방해야 하는데, 외려 큰 손실이 발생하고 말았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 금리인상 등으로 손실이 불가피했고 다른 글로벌 연기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손실이 작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설립된 1988년부터 2022년까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은 연평균 5.22%에 그쳤다. 같은 기간 우리 경제와 기업의 성장을 생각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국내 주식시장의 저평가 요인을 하나로 꼽을 수는 없다. 후진적인 기업 거버넌스, 소홀한 주주권 보장이 항상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하려면 제도적 접근과 더불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의 관여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적극적인 주주 관여 활동은 그 자체로 거버넌스 개선에 해당한다. 관여활동이 활발한 만큼 주주의 권리가 보장될 가능성도 증가한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자금의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합병비율이 불공정했음에도, 국민연금이 외압에 의해 찬성했던 것에 대한 반성적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5년 가까이 지난 지금,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대해서는 결코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다. 지금껏 국민연금이 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한 곳은 단 2개(남양유업, 현대그린푸드)에 불과했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보전과 위법행위 예방을 위한 주주대표소송은 단 한 번도 제기하지 않았다. 소극적 형태인 의결권 행사에서 국민연금이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는 기권을 하거나 회사 안건을 그대로 따르는 모습이 여전히 나타났다. 결국 국민연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곧 국민연금이 수익률 개선을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일각에서는 집권세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온전히 확보하기 어려운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극적 주주권 행사야말로 정치적 압박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독립적이고 공정한 주주활동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최근 대표이사 선임을 두고 정치적 외압 논란이 있었던 KT 역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방기했기 때문에 논란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금운용본부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갑자기 KT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경선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외압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시점이나 발언자의 지위에 비추어 보더라도 부적절했지만,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른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발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연금 가입자의 한 사람으로서 차라리 국내 주식에 장기투자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마저 든다. 국민 노후자금 보장을 위해 이제라도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