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퇴직 임직원 근무 업체 위주 설계·감리 선정…무량판 구조 민간아파트 조사 예고에 업계도 전전긍긍
#LH 철근 누락 논란 앞과 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지난 7월 31일 철근을 누락한 LH 발주 공공아파트 15개 단지를 공개했다. 15개 단지 중 10개 단지는 설계 과정에서 철근이 누락됐고, 나머지 5개 단지는 시공 과정에서 철근이 누락됐다. 국토부는 입주가 진행 중인 3개 단지에 대해 보강 공사를 마쳤고, 4개 단지는 보강 공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8개 단지도 신속히 보강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15개 단지는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무량판 구조는 상부의 무게를 떠받치는 보가 없고, 기둥이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지지한다. 기둥에 하중이 집중될 수 있으므로 기둥 주변에 철근을 여러 겹 감아줘야만 한다. 하지만 해당 15개 단지는 기둥 주변에 철근을 부족하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월 붕괴 사고가 발생한 인천광역시 서구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도 무량판 구조를 적용하다가 철근이 누락된 사례다.
이번 철근 누락 사태의 배경으로는 LH의 ‘전관예우’가 거론된다. LH가 퇴직 임직원 근무 업체 위주로 설계·감리 업체를 선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에 문제가 된 15개 단지를 살펴보면 5개 단지는 LH가 직접 감리를 맡았고, 나머지 10개 단지는 외부에 감리를 의뢰했다. 그런데 해당 10개 단지 중 7개 단지는 LH 출신 직원이 고위직으로 근무 중인 업체가 감리를 맡아 논란이 되고 있다.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의 설계·감리도 LH 출신 임직원이 근무하는 업체가 맡았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급 이상의 LH 퇴직자가 최근 5년간 재취업한 업체 9곳이 LH와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이들 9개 업체와 LH가 2019년부터 올해까지 계약한 설계 및 감리 건수는 203건, 거래 규모는 2319억 원에 달했다. 전관예우 논란이 불거지면서 시민단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감사원에 LH 전관예우와 관련한 공익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감사를 요청한 주요 내용은 △전관 영입 업체 부실설계 봐주기 △전관 영입 업체 부실감리 봐주기 △공공사업 전관 영입 업체 밀어주기 등이다.
정치권에서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일 “문제의 근본 원인은 건설 산업의 이권 카르텔”이라며 “국민 안전을 도외시한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LH를 비판하고 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권 카르텔의 실체에 대해서는 먼저 LH 퇴직자들이 몸담은 전관업체 문제가 면밀히 조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국민에게 안전한 주택을 제공해야 할 LH가 부실 아파트를 양산하는 기관이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LH의 미래는?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진상 규명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LH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건축 이권 카르텔이 벌인 부패의 실체를 규명하고 그 배후를 철저히 가려내기 위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LH도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고 있다. LH는 지난 8월 2일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반카르텔 및 부실시공 근절을 위한 조직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문제가 된 15개 단지에 대해서는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이한준 LH 사장은 “전관특혜 의혹이 더 이상 불거질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국민이 수긍할 수 있도록 의혹을 소상히 밝히겠다”며 “이러한 노력이 건설 공기업을 포함해 공공기관과 연루된 이권 카르텔 의혹을 불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하나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제도개선과 예방시스템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자구책을 내놓았지만 LH에 대한 정부의 칼날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나 감사원 등 사정기관은 이미 LH 조사 요청을 받은 상태다. 안 그래도 LH 일반 직원들은 최근 몇 년간 사기가 크게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LH는 2021년 임직원 부동산 투기 사태를 겪으면서 임직원 수가 2020년 말 9683명에서 올해 6월 말 8885명으로 줄었다. 또 LH는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3년 연속 D등급을 받아 수년째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LH 국정조사가 정치적 노림수라는 시각도 있다. 이한준 현 LH 사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인 지난해 12월 취임했다. 하지만 LH 요직에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가 포진해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인사를 좌천시키고, 새로운 인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인지 더불어민주당은 LH를 비판하면서도 국정조사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8월 2일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전 정부 탓을 하며 LH 국정조사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 책임론과 선을 긋겠다는 물타기 의도”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국정조사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면 LH 국정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현행법상 국정조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재적 의원의 과반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의 과반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국민의힘 의석수는 112석이므로 국정조사를 단독으로 강행할 수는 없다. 물론 오는 10월 국회 국정감사가 열릴 예정이므로 LH가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민간 건설업계도 전수조사
정부는 철근 누락 아파트 조사를 민간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조사 대상은 2017년 이후 준공된 전국 민간 아파트 중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293개 단지다. 필요한 경우 조사 대상을 2017년 이전 준공 단지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2일 긴급 고위당정협의회를 마친 후 “무량판 부실시공으로 인한 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아파트 단지의 전수조사와 지난 정부의 잘못된 관행, 위법 행위를 철저히 조사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며 “법 위반이 발견되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이권 카르텔을 혁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건설업계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철근 누락 사실이 밝혀진 업체는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에서는 민간 아파트 중에서도 철근을 누락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건설업계가 정부의 방침을 반대할 명분도 없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수년 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 수익을 빠르게 올리기 위해 공사를 대충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귀띔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도 “무조건적 물량 죽이기로 나타나는 불법도급과 무리한 속도전이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GS건설은 시공을 맡은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가 붕괴 사고를 겪자 신뢰도가 급락했다. 붕괴 소식이 알려진 지난 7월 6일, GS건설의 주가는 1만 8030원에서 1만 4520원으로 19.47% 하락했다. 인터넷 포털이나 SNS 등에서 GS건설을 비판하는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GS건설은 안단테 아파트 재시공을 결정하면서 재무적으로도 상당한 악영향을 받았다. 장문준 KB증권 연구원은 “국토부 조사에서 구조적 부실이 다시 발견된다면 GS건설 주가의 추가적인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국토부는 시공사에 안전진단 비용을 납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오진 국토부 차관은 “안전진단에 소요되는 비용은 원칙적으로 시공사가 부담하는 방안으로 추진하겠다”며 “부실시공이 발견된 경우 시공사가 자기 비용으로 보수·보강공사를 실시하도록 하고, 안전에 대한 책임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따라 등록 취소, 영업 정지, 벌금 등으로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시공사의 비용 납부가 부당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명확한 불법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 명령에 의해 안전진단을 진행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김오진 국토부 차관은 “시공사에 부담할 수 있는 근거법령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대한건설협회에 협조를 요청하는 건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가 파산하는 등의 이유로 안전진단 비용을 납부하지 못할 수 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건설업계 전반적인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안 그래도 최근 미분양 증가에 시멘트값 상승으로 건설업계 전망은 좋지 않다. 한국기업평가는 보고서를 통해 “분양가격지수 상승폭이 건설공사비지수 상승폭을 하회함에 따라 건설업 전반의 원가부담이 확대됐다”며 “분양공급이 과거 대비 감소함에 따라 분양가 상승이 건설업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도 “(건설업계는) 부실공사 등에 따라 하반기 마진 개선이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한다”며 “주택에 대한 기대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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