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업계는 지난 몇 년간 소속 아티스트의 지식재산권(IP)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사업을 시도해 왔다. 동시에 엔터테인먼트업계의 블록체인 투자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JYP엔터도 예외는 아니었다. JYP엔터는 2020년 이후 △디어유(214억 원) △포바이포(50억 원) △네이버제트(50억 원) 등에 투자했다. 모두 블록체인 관련 업체다.
JYP엔터 블록체인 사업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JYP엔터는 2021년 두나무와 NFT 사업을 위해 조인트벤처(JV·2인 이상이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동으로 진행하는 사업체) 설립을 추진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두나무는 2022년 4월 JV 무산 소식을 발표하면서 “현 시점에서 JV 설립을 위한 사업협력 계약은 양사 합의로 해지하기로 했다”며 “JV 설립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협업할 수 있는 기회는 지속적으로 모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JYP엔터는 IT 전문 기업이 아니다. 타 업체와의 협업이나 인수합병(M&A) 없이 블록체인 사업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두나무와의 JV 설립이 무산되면서 JYP엔터의 블록체인 사업도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2022년 사업목적에 블록체인 사항을 추가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JYP엔터의 NFT 사업 관련 의지는 여전해 보였다”면서도 “두나무와의 JV 설립 취소로 인해 JYP엔터의 NFT 사업은 경쟁사들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비쳤다”고 분석했다.
다만 JYP엔터는 이후로도 블록체인 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여왔다. JYP엔터는 2022년 3월 △블록체인 연구개발업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 △블록체인 투자 및 관련서비스업 △블록체인 데이터 생성 및 네트워크 관리 사업 △블록체인 활용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구축 및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 개발 사업 등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JYP엔터는 비슷한 시기 문경미 더컴퍼니즈 대표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JYP엔터 이사회는 문경미 대표 추천 이유에 대해 “블록체인·NFT 관련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신사업 및 사업다각화 관련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이 수익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JYP엔터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업체 대부분의 블록체인 사업은 적자를 기록 중이다. JYP엔터가 블록체인 사업을 재검토하는 것도 수익성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JYP엔터 관계자는 “블록체인 관련 사업은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시너지는 높으나 안정적인 사업 구조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상황으로 대외적인 시장 상황 및 관련 사업 역량이 보다 성숙해지면 본격적으로 사업 추진에 대한 고려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JYP엔터 아티스트 IP와 블록체인 기술력 접목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인 사업 구조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추후 업황의 변화에 따라 회사가 안정적인 사업 구조로 추진이 가능한 시기를 파악하고 재검토 논의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JYP엔터는 당분간 기존 사업인 아티스트의 공연, 앨범, MD(기획상품) 등에 집중할 방침으로 전해진다. 사실 JYP엔터가 새로운 수익원을 급하게 발굴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 기존 엔터테인먼트 사업만으로도 실적이 크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JYP엔터의 매출은 2022년 1~3분기 2307억 원에서 2023년 1~3분기 4094억 원으로 77.49%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09억 원에서 1315억 원으로 85.42% 증가했다. 이 같은 실적 상승은 코로나19 앤데믹(풍토병화)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JYP엔터에 대한 전망도 나쁘지 않다. 증권가에서는 2024년 가장 주목할 엔터테인먼트 업체로 JYP엔터를 꼽을 정도다. 김규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JYP엔터의) 일본 걸그룹 니쥬(NiziU)가 차세대 트와이스로서 일본에서 성과를 거두며 제작 역량을 증명했다”며 “일본에서 방영 중인 ‘니지 프로젝트2’와 2021년 최종 멤버를 확정한 프로젝트C 역시 데뷔 예정으로 니쥬 규모의 성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분석했다. 프로젝트C는 JYP엔터 중국지사에서 준비 중인 5인조 보이그룹이다.
다만 장기적 관점에서의 안정적인 수익은 장담할 수 없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특성상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소속 아티스트의 각종 행보에 따라 실적이 좌우되기도 한다. 일례로 YG엔터테인먼트(YG엔터)는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와의 개인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실적 우려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올투자증권은 블랙핑크 재계약 불발 소식이 전해진 직후 YG엔터의 목표주가를 10만 원에서 7만 원으로 낮추기도 했다.
JYP엔터도 블록체인 사업 계획은 보류했지만 신사업 투자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JYP엔터는 2023년 2월 벤처캐피털(VC) 자회사 JYP파트너스를 설립했다. 당초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JYP파트너스의 블록체인 투자를 예상했다. 현재는 JYP엔터가 블록체인 사업 계획을 재검토한 이상 JYP파트너스도 블록체인이 아닌 다른 분야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의 JYP엔터 관계자는 “JYP파트너스는 엔터테인먼트·콘텐츠 산업 내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는 VC 투자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더불어 관련 분야 외에도 신기술금융사의 목적에 맞게 펀드를 통해 유력한 FI(재무적투자) 투자 포트폴리오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실물이냐 가상이냐…JYP엔터와 하이브의 상반된 MD사업 전략
JYP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포레스트팩토리와 위블링에 각각 15억 원, 18억 원을 투자했다. 포레스트팩토리는 엔터테인먼트 전문 인쇄 기업으로 실물 음반과 MD(기획상품) 등을 제작하고 있다. 위블링은 포토북, 홍보물 등을 제작하는 인쇄 업체다.
JYP엔터의 투자 행보를 놓고 일각에서는 JYP엔터가 실물 굿즈 생산에 주력하려는 의지로 풀이한다. MD 사업은 JYP엔터 전체 매출에서 무시 못 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JYP엔터의 MD 제작·유통 계열사 JYP쓰리식스티는 지난해 1~3분기 매출 419억 원, 순이익 53억 원을 기록했다. JYP엔터의 지난해 1~3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4094억 원이다. MD 사업이 JYP엔터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JYP엔터와 반대로 가상 MD 생산에 집중하는 곳도 있다. 하이브는 2022년 두나무와 합작법인 ‘레벨스’를 설립했다. 레벨스의 플랫폼 ‘모먼티카’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소속 아티스트의 디지털 카드나 영상 등을 제공한다. 레벨스 관계자는 2022년 10월 모먼티카 출범 당시 “모먼티카를 통해 케이팝 팬덤이 즐기는 기존의 놀이 문화를 디지털 콜렉터블 형태로 확장하겠다”며 “엔터테인먼트, 게임, 스포츠, 아트 산업 등의 다채로운 콘텐츠를 더 친숙하고 편리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서비스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모먼티카는 연일 신규 제품과 이벤트를 선보이면서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문제는 실적이다. 레벨스는 지난해 1~3분기 매출 3억 2252만 원, 영업손실 143억 510만 원을 기록했다. 하이브 전체 매출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NFT 모델은 팬덤 활동에 대한 적합한 보상 모델”이라면서도 “이를 신사업으로 삼기에는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재무적 기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는 가상 MD 시장이 고성장할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JYP엔터의 기존 실물 MD 사업 강화와 하이브의 가상 MD 사업 강화라는 상반된 전략이 향후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시선이 쏠린다.
이와 관련, JYP엔터 관계자는 “포레스트팩토리와 위블링 투자는 JYP엔터의 기존 음반 사업을 비롯해 주문형 MD 사업의 투자로 본업의 시너지 강화 측면으로 이해함이 적절하다”며 “음반 시장 성장에 따른 인쇄업 투자와 플랫폼과 연동되는 주문형 MD 사업 투자를 통해 기존 성과를 내고 있던 핵심 사업들과의 시너지를 도모하는 한편 재무성과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