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대표적 여걸로 꼽히는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티타임 토크’를 가졌다. 두 의원은 가족사에서부터 여성 의원으로서 어려움, 어머니의 입장, 현 정국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곧 설이다. 정계에 몸을 담고 있지만, 두 분 다 집안의 며느리이기도 하다. 명절 계획은.
추미애(추): “맞다. 물론 우리 집안 설 준비도 해야 한다. 우리가 제사를 모신다. 한편으론 지역 전통시장을 찾을 계획이다. 얼마 전 영하 14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강추위가 계속됐다. 당시 시장을 가보니 상인들이 설 대목을 앞두고 미리 준비해 놓은 상품(야채)들이 다 얼었다고 하더라. 상인들이 대목을 보셔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경원(나): “저희 집도 2년 전부터 제사를 모시고 있다. 남편이 외아들에 장손이다. 작은 아버님만 여섯 분이 계셔서 명절에 모이면 40명은 된다. 제가 앞서 연휴 2일은 준비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아예 동서들에게 각자 음식 숙제를 내줬다. 다행히 현충원이 우리 지역(서울 동작을)에 있다. 설 당일엔 빨리 참배하고 차례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곤 저 역시 재리시장을 다녀올까 한다. 그런데 참 가기 죄송스러울 때가 있다. 너무 덤을 많이 주셔서. 얼마 전엔 배고파서 붕어빵 3000원어치를 샀는데 거의 5000원어치를 주시더라.”
―여성 정치인이다 보니 명절도 남성들보다 배는 바쁠 것 같다. 여야를 대표하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지난 의정 생활의 소회를 듣고 싶다.
나: “여전히 여성 정치인은 소수다. 아직 정치문화 자체가 남성중심이다.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으신다면 정보에서의 소외를 꼽고 싶다. 한 예로 국회 목욕탕이다. 남성 정치인들은 목욕탕에서 얘기들도 많이 하고 합의도 하시더라. 그런데 나는 함께 할 수 없지 않나. 여성이 정치 활동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다들 좋아하고 반가워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여전히 갸우뚱하는 부분이 있다.”
추: “우리 사회에 아직 전통적 요소가 많다. 앞서 나 의원이 말했듯 마지막 순간엔 여성이기 때문에 유보하는 경향도 있고. 난 이에 도전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롤 모델로서 살아왔다. 후배들에게 용기를 드린 것도 같은데 여전히 전통적 요소에 갇혀있다. 남성들이 고쳐줘야 한다. 정말 우리는 할 만큼 했다. 이런 요소들 빼면 여성은 정치에 있어서 잠재력이 많다. 남자는 소통을 말로 하고, 안되면 주먹으로 한다. 여성은 말도 주먹도 아닌 마음으로 한다. 여성에겐 아이를 잉태하고 낳아 키우는 과정에서 나온 책임감과 배려가 있다. 이는 책을 읽어도 누가 일러줘도 안 되는 부분이다. 출세욕과도 다르다. 정치엔 약자를 배려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남성은 구호로 공감을 얘기하지만 실은 여성만큼 잘 못한다.”
나: “어머니의 리더십이 그것이다.”
추: “맞다. 여성은 책임감이 있다. 회피하지 않는다. 못하겠다고 놓아버리지 않는다. 자식을 선택해서 키우진 않지 않나.”
나: “백 프로 공감한다. 추 의원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치는 소회된 분, 약자들의 출발선을 앞당겨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자기를 헌신하고 남을 배려하는 것. 20~30대 훌륭한 여성분들이 정치권에 진입하려고 할 때마다 아직은 좀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들에게 기회를 줘야한다. 제가 그 동안 ‘여성할당제(공천비율 30%)’를 주장한 이유가 그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가 좀 더 노력하고 힘을 내보겠다.”
―두 분 모두 법조계에서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어떤 심정이었나.
추: “그 때(1995년) 내 나이가 서른여덟이었다. 팔팔한 시절이었다. 당시는 한 번도 민주적 선택에 의해 정부를 창출한 적이 없었던 때였다. 내가 있던 사법부 분위기부터가 어두웠다. 공안사건이 내려오면 이미 정답이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사법발전을 위해선 정치발전이 있어야 했고, 그것을 위해선 정권교체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청춘을 받쳐보자는 확신이 생겼다.”
나: “저는 개인적 경험이 정치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됐다. 저에게는 (장애가 있는) 딸이 있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내 아이를 통합교육을 시킬지 아니면 특수교육을 시킬지 고민을 하게 된다. 난 통합교육을 선택했다. 그런데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려 했을 때 당시 그 학교 교장에게 큰 모욕을 당했다.”
(어떤 일이 있었나.)
나: “해당 학교에 아이의 원서를 내고 교장을 뵈러 갔다. 유명한 학교였고 교장도 유명한 분이었다. 그런데 제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일어서지도 않고 반말로 말하더라. ‘엄마. 장애인을 교육시킨다고 똑같이 되는 줄 아느냐. 꿈 깨라.’ 교육청에 법을 토대로 앞서 교장과 학교에 대한 행정처분을 요청했지만 교육청도 뭉개더라. 그런데 내가 판사 신분을 밝히니 그 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느꼈다. ‘정말 사회가 법이나 제도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하고. ‘법이 잘못돼 있으면, 사회적 약자는 떼를 쓸 수밖에 없구나.’ 하고. 이 경험이 없었다면 나 같은 사람은 용기를 못 냈을 것이다.”
―이 길에 들어선 것에 후회한 적은 없나.
추: “울 때도 많다. 난 법률가로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도나 법의 모순을 이해고 풀 수 있는 능력은 있다. 하지만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주변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내 안의 논리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때론 법과 제도가 부딪히고 사람끼리 싸운다. 더군다나 우리 당 상황이 편치 않다. 이미 10년 전에 한 번 쪼개졌다. 정치와 정당은 지지 세력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넉넉히 안아주고 품어줘야 한다. 그런데 만날 우리 당은 흔들린다. 싸움만 한다. 누군가는 정당을 지켜내고자 하는데 누군가는 내놓고 나간다. 나는 남아서 지키고자 하는데, 누군가는 이를 ‘침소봉대’하여 화살을 쏜다. 내가 이 정성을 다 바쳐 정치를 하는데 아무도 이를 안 알아줄 때, 난 ‘왜 이 길로 왔지’하고 가슴을 칠 때가 있다. 그 땐 너무 힘들어서 베개를 적시면서 운다.”
나: “추 의원께서 참 뜨거우신 것 같다. 추 의원도 그렇지만 나에게도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나 의원은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시장에 패한 뒤 3년 간 휴지기를 가진 바 있다.) 다만 그런 건 있다. 그 시기가 없었다면 아직 난 모르는 게 너무 많았을 것 같다. 사실 난 가족에게 제일 미안하다. 둘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내가 쉬게 됐다. 이전엔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쉬게 됐을 때 아이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줬는데 맛있다고 하더라. 다들 엄마표 음식이 하나쯤은 있는데 우리 아인 그게 없었다.
”
―두 분 모두 가족 중에 장애가 있는 분들이 있다. 나 의원의 따님도 그러시지만, 추 의원은 남편 분이 장애를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분 다 가족이 애틋할 것 같다.
추: “나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교통사고 이후 장애를 앓게 됐는데, 지난해 미루다 미룬 수술을 받게 됐다. 무엇보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받는 상처가 굉장히 크다.”
나: “맞다. 정말 크다.”
추: “둘째 딸이 나와 비슷하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동안 학교가기 싫어하더라. 누가 (추미애의 딸인 것을)알아볼까 부담된다는 이유였다. 언젠가 딸이 그런 얘기를 내게 하더라. 친구랑 셋이 길을 가다가 누군가 휴지를 버렸는데 ‘추미애 딸이 함부로 휴지를 버리고 다닌다.’고 소문이 날까봐 그 휴지를 주워서 집에 들고 왔다고. 그러면서 울더라.
나: “너무 공감한다. 우리 딸은 하지 말라는 것을 혼자 되 내이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언젠가 그러더라. ‘댓글을 절대 보면 안 돼.’ 우리 아들에겐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 한문 시간에 부모님 이름을 한자로 쓰는 수업이 있었다. 아들이 칠판에 내 이름을 적으니 옆에 친구들이 ‘우리 동네 국회의원 이름이다’ 하고 알아보더란다. 그 때 아들이 ‘동명이인이야’라고 했다고.
―정치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같은 여성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나: “경로당가면 어머님들이 그런다. 대통령 좀 도와주라고. 다른 것은 몰라도 일단 ‘애국심’은 뚜렷하시지 않나. 외부에서 평가가 굉장히 좋다. 일례로 중국의 여성 정치인인 푸잉 외사위원회 주임이 그러시더라. 박 대통령을 보면 신뢰란 단어가 생각난다고. 박 대통령의 장점은 신뢰와 믿음이다.”
추: “글쎄다. 지지자가 아닌 분들에게 먼저 신뢰감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일례로 북핵문제다. 대통령께서 통일대박을 말씀하셨다. 북핵은 통일의 장애물인데 이 문제에 대해선 항상 유보적으로 얘기하시더라. 구호만 외치고 정책과 원칙은 부족해 보인다. 내용이 있어야 뭐든 공감대가 형성될 텐데. 원칙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단계적 통일론과 같은 원칙이 있고, 뒷받침하는 정책이 있어야 한다. 벌써 정권 후반기인데 통일에 대한 대원칙도 설명 안 하시고 그냥 지금까지 선언만 하신 거다. 정책이 있다면 그 때마다 여야 간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인데 말이다. 좌절감이 굉장하다.”
나: “제가 외통위원장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우린 신뢰 프로세스를 지향한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러한 관심을 토대로 지속적 과정을 밝아왔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이산가족 재개 합의 및 상봉이 그 한 예이다. 북핵문제 해결도 결국 투 트랙으로 가야한다. 대화와 제제의 부분이 있는 거다. 우리가 지금 시점(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에 제제만 하나. 자세히 봐라. 개성공단은 그대로 유지한다. 예전 같았으면 개성공단 닫는 게 맞다. 그렇게 안 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신뢰 프로세스를 원칙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유지하는 것이다.”
―여야가 오는 총선을 앞두고 모두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안철수 세력’이다.
추: “집안 싸움하다가 이젠 밖에 나가서 싸우고 있는 꼴이다. 이젠 국민들이 눈치 챘다. (새정치가) 뚜렷한 비전, 새로운 정치 심장을 박동 치게 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냥 ‘집안싸움을 밖에 나가서 하는구나.’ 하고. 그저 지지자들 갈라치기 하는 거지.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제대로 한다면 (안철수 세력은) 수렴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대통령 중심제는 양당 구조다. 분화되면 정권교체 안 된다. 누구나 안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에 수렴될 것이다.”
나: “야권연대를 한다는 것인가.”
추: “연대든 뭐든 국민이 선택할 수밖에 없게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야권도 분열 현상이 극심하지만, 여권 내부에선 ‘진박연대’라는 것이 등장했다.
나: “답답하다. (진박연대의 등장은) 결국 정치를 하고 싶은 분들이 부풀리고 과장하는 행동이다. 모여서 사진도 찍고. (대통령을 선거에) 이용하는 측면이 좀 많다. 우리 당이 국민에게 가까이 가는데 결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에게 이번 총선은 어떤 의미인가.
추: “국민들이 화가 많이 났다. 윗목과 다르게 아랫목엔 냉기가 흐른다. 양극화가 너무 심하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대통령께서 이미 쓰셨지만, 이젠 정말 피부에 와 닿아야 한다. 이번 총선은 이러한 민생문제를 풀 정책과 능력이 있는 인물이 핵심이다. 그것이 관전 포인트다.”
나: “결국 정치는 갈등의 해소와 조정이 핵심이다. 지금 사회 갈등이 심하다.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 이를 해소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각 당의 공천과정에서 청년 할당제를 도입해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고자 해야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역시 지역 갈등 아니냐. 정말 다음엔 석패율제(지역구에서 아깝게 패한 후보에게 비례에 우선 배정하는 제도) 도입해야 한다. 참 아쉽다.”
추: “나도 동감한다. 정말 이번 선거에 석패율제 도입했으면 좋겠다. 정말 도입해야 한다. 벌써 석패율제 얘기가 나온지 15년이 넘었다. 정말 못하겠으면 나 의원하고 저에게 위임해달라고 해야겠다.”
나: “우리가 정개특위에 들어갔어야 했다.”
추: “다음 국회에서 한 번 논의해 보자.”
―만약 오는 총선에서 당선된다면, 향후 의정 계획은 뭔가. 특히 추 의원은 차기 당권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고, 나 의원은 이미 이전 인터뷰를 통해 ‘원내대표’ 의지를 드러냈다.
나: “원내대표 하고 싶다고 내가 솔직히 얘기했다. 자가발전이다. 앞서 갈등에 대한 얘기를 했다. 여야가 그런 갈등을 해소하고 좀 더 생산적 국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내가 원내대표를 하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감히 그렇게 생각한다.”
(당대표 도전에 대한 추 의원의 생각은)
추: “총선을 앞두고 당이 나뉘었기 때문에 지지자들께 송구하다. 우리 스스로 하나로 수렴하고 정권 심판을 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통합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예전 삼보일배의 그 간절한 마음으로 내 역할을 할 각오가 있다. 우선 저 스스로도 열심히 해서 승리해야겠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의미 있는 의석을 차지하도록 노력하겠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한-일 위안부 합의 두고 입장 팽팽 “아쉬움도 있지만 성과도” vs “합의는 원천무효” 나경원 의원 추미애 의원 우선 나 의원은 이번 협상에 대해 “현실적 제약이 많았고 어쩔 수 없는 외교적 결정이지만 협상 과정에서 미리 위안부 할머님의 의견을 구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라면서도 “하지만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일본 정부로부터 책임을 인정받았고 돈(보상금)을 내놨다는 점은 성과다. 이젠 향후 후속조치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평했다. 이에 추 의원은 “합의는 원천무효”라고 정면 반박하며 “위안부 문제는 역사의 단면이 아니라 전 세계가 공분하는 미완의 현재진행형 인권 문제다. 보상금 10억 엔을 주면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야 하나. 이 문젠 어떤 위안부라는 특정의 피해자만의 동의가 아니라 지금 대한민국의 딸,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문제다. 이런 합의라면 무효고 10억 엔도 받고 싶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추 의원의 반박에 나 의원은 “합의에는 일본정부가 진지하게 노력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라며 “중요한 것은 후속조치다. 일본 정부가 계속 망언을 하거나 하면,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라고 재반박하며 연석 인터뷰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했다. [한][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