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거리에 위치한 원썬의 클럽에서 그를 만났다. 텅 빈 클럽에 대해 “인터뷰 때문에 하루 장사를 포기한 거냐”고 묻자 원썬은 “정상 영업 중이다. 손님이 없는 거다”라고 답했다.
-<쇼미더머니5>에서 탈락 이후 사람들의 반응을 알고 있었나?
“사실 나는 그 방송을 전혀 안 봤기 때문에 사람들 반응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떨어지고 나서는 너무 부끄럽고, 내가 보기에도 오글거리니까 찾아볼 생각도 못했다. 그러던 중에 엠넷에서 <음악의 신2> 섭외 전화를 받게 됐는데, ‘나를 대체 왜? 어디다가 쓰려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이라서 일단 녹화현장에 나간 뒤 대본을 봤더니 내가 <쇼미더머니5>에서 한 것 같은 말들로만 대본을 짜여 있었다. 그때서야 내가 <쇼미더머니5>에서 한 대사와 심사위원들의 대사가 온라인 상에서 패러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재미있어 하고 있다는 것도.”
-방송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 상으로는 원썬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다수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몰랐다. 알게 된 건 어느날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카톡메시지를 받았을 때였다. ‘형, 팬이에요’ 그러더라. 내 카톡아이디가 인스타그램 아이디와 같아서 쉽게 찾았다고 했다. 내가 아닐 수도 있는데 그렇게 용기를 내서 나를 찾고 말 걸어줬다는 게 얼마나 고맙던지. 그래서 이야기를 좀 해봤더니 이 친구가 나랑 이야기한 내용을 인터넷에 올려 많은 사람들에게 내 카톡아이디가 공개됐다. 하루에 수백 통의 카톡 메시지가 오더라.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주제로 만든 ‘원썬 모의고사’가 있다는 사실과 ‘1일 1원썬’이라는 말도 알게됐다. 기가 차더라(웃음).”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원썬
“나를 찾아줘서 고마운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질문에 허세 같은 것 없이 대답해줘서 그걸 좋게 봐준 것 같다. 내가 아직 사람들의 관심을 알게 된 게 일주일이 채 안 됐는데, 일주일 동안에 강제로 맞은 전성기라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쇼미더머니5>에 나가서 뭔가를 진짜 보여주고 얻게 된 피드백이나 팬심(心)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다들 내게 ‘음악이 너무 좋다’ ‘존경한다’ 등의 말을 해주고, 당연히 거짓말이겠지만 ‘잘생겼다’는 좋은 말만 해주는데 그렇게 재조명받는 건 뿌듯한 일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것이라는 부담이나 그런 응원과 서포트를 갚아야 할 의무감이 생겼다.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그랬다. 내가 갑자기 더욱 많은 결과물을 한꺼번에 내고 그러진 않겠다. 그래도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6개월에 음원을 하나씩 낼 수 있도록 하겠다. 사실 만들어 놓은 건 엄청 많다(웃음.)”
-애초에 1세대 래퍼로서 <쇼미더머니1>에서 심사위원으로 먼저 컨택됐으나 거절했다고 들었다. 이후 <쇼미더머니5>에서는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심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그런 걸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실 <쇼미더머니5>의 프로듀서로 나온 사이먼 도미닉 같은 경우는 내가 래퍼로 활동할 때 부산에 공연을 가면 자주 만났던 친구다. 리쌍의 길이 형하고는 알고 지낸 지 20년 돼 가고, 프로듀서로 나온 친구들도 다 나랑 10년 이상 알고 지냈다고 보면 된다. 후배들이나 친구들한테 심사를 받고, 그런 것도 재미있지 않나? 내가 <쇼미더머니5>에 나가서 그들에게 심사를 받고, 떨어진 것도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떨어진 내가 지금 이렇게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줄은 <쇼미더머니> 제작진도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후 <음악의 신2> 등에서 비슷한 컨셉으로 출연한 것도 큰 화제가 됐는데
“사실 제일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쇼미더머니5> 패러디한 대본인 걸 몰랐었다. 대사만 떼어놓고 봤을 때는 어법도 이상하고 구어체로 보기에도 이상한 문장들로 돼 있어서 내가 좀 고친 것도 많다. 보다 보니까 ‘어, 이거 왠지 내가 한 말 같은데?’ 싶어서 생각해보니 내 대사였다. 촬영할 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으니까’ ‘오, 오랜만이다’ 같은 대사는 괜찮았지만 ‘늙은이는 안 된다, 그런건가’ 이건 못하겠더라. 같이 출연하는 탁재훈 형, 이상민 형 다 나보다 나이 많은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나?”
-<쇼미더머니5>에서 부른 ‘축귀’라는 곡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나?
“앞 부분만 축귀를 쓴 거고, 탈락한 시점 그 다음부터가 새로 만든 랩이었다. 일 분 동안 랩을 하는 건데 랩스킬보다는 음악적으로 완성된 기승전결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때 탈락하고 나서 ‘조금만 더 들어주지’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원곡의 앞 부분과 뒷부분은 다르다. 다들 노래의 뒷부분을 궁금해 하길래 조만간 제대로 공개하려고 한다.”
인터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중 드디어 손님이 들어왔다. 손님이 주문한 칵테일을 만들고 있는 원썬
-음악 외에 하는 일이 많다는 것도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일단 여기(홍대의 원썬 클럽)를 운영하고 있는데 빚만 잔뜩 졌다(웃음).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는 공사판 노가다, 호프집 서빙, 편의점, 택배, 배달, 외국어강사, 대리 운전 가리지 않고 했다. 그렇게 돈 벌어서 악기를 사고 남는 시간에 계속 음악을 만들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1세대 래퍼들, 가리온이나 메타 형들도 다를 게 없었다. 지금도 낮에는 인테리어 설비 일 하고, 일주일에 한 두번씩 철거용역 나가고, 가끔 학교에서 강의도 하면서 음악을 만들고 있다.”
-홍대 클럽에서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을 위한 공연을 연다고 들었다.
“옛날 우리가 음원을 기획해서 낼 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리는 음원을 내는 게 어려웠지 내고 나면 할 게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는 건 쉬운데 내고 나서 할 게 없다. 음원을 내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일단 내고 나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파이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홍대 클럽 사장님들을 다 만나면서 언더그라운드 공연을 격주로 개최하려고 하는데 지원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때 지금 이 가게(원썬의 클럽) 사장님이 장소를 제공해주고 내가 대관료를 내고 매년 공연을 하게 됐다. 벌써 5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도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을 초대해 매주 토요일마다 공연을 하고 있다. 입장료를 받으면 참여한 뮤지션들에게 모두 나눠준다. 누가 보면 음악으로 돈 벌 생각 안 하는 게 아니냐고 물을텐데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빚에 허덕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낮에 일하며서 어쨌든 음악을 하고 있지 않나. 이런게 내 역할인 것 같다. 몸과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해서 (공연을) 할 생각이다.”
-방송 욕심은 없나?
“전혀 없다. 지금 인터뷰 하게 된 것도 사실 되게 어이없는 케이스다(웃음). 누가 그 방송을 보고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나.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관심을 가져주고 어디서든 나를 필요로 한다면 가려고 한다. 나처럼 ‘짬으로만 바이브를 가지고 있는’ 놈들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내게 카톡으로 응원의 메시지 보내주시는 분들께 이렇게 얘기한다. ‘이제까지 해 온 것만 열심히 하겠다. 그때까지 웃어준다면 굉장히 고맙겠다’고.”
-<쇼미더머니5> 같은 방송이나 성공한 힙합 뮤지션들을 보고 래퍼의 꿈을 키우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다. 한 마디 한다면?
“지금 기준하고 다를 순 있겠지만 한국에서 힙합하겠다고 뛰어들었다면 그건 똥통에 빠진 거나 다름 없다. 살아나려면 똥을 계속 파내야 한다. 그 일에는 평생이 걸릴 수도 있고, 단 한 번에 파낼 수도 있다. 그런데 절반은 파내야 사람들이 그 안에 네가 있는 걸 보게 된다. 빨리 돈을 벌고 유명해지고 싶다면 다른 일을 해라, 그게 목적이 되면 안 된다. 랩이 좋고 음악이 좋다면 자신이 그것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도전해라.”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