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사진제공-청와대
국민은 궁금할 것이다. 매주말 늘어나는 촛불민심에도 어떻게 새누리당 친박계가 저렇게 버틸 수 있는지. 반대로 비박계는 같은 당적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이 해당행위라면 탈당해서 탄핵에 동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박 대통령을 붙들고 있다간 정권재창출은 요원할 것이 최근 4~5%의 지지율이 증명하고 있는데 말이다.
올해가 병신년이긴 하지만 또 다른 이중적인 의미로 ‘병신 몇 적’을 달아 리스트를 나열하는 것이 유행일 정도인데 친박계는 무슨 의리로 박 대통령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 속엔 치열한 향후 정치생명의 이해관계가 얽힌 수싸움이 숨어 있다.
친박계 소속 국회의원과 관계자들 말을 종합하면 친박계는 박 대통령 탄핵을 피하고 헌법을 개정하고 싶어 한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는 순간 대통령 직무가 곧바로 정지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청와대에 남아 있을 수도 있는 각종 국정농단의 증거가 어떻게 친박계를 향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되는 순간 휘슬블로어(내부고발자)가 얼마나 나와 어떤 폭로를 이어갈지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우려도 뒤를 잇는다. 탄핵보다는 퇴진의 시간을 정해 친박계를 향할지 모를 폭로, 증거, 증언을 조용히 묻어야 한다. 기어코 탄핵의 방패막이를 자처하는 솔직한 속내다.
게다가 탄핵을 막으면 개헌 명분이 배가 된다.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대통령에게 사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헌법이라면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 친박계는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국내 사정에 맞게 끼울 것이란 이야기가 밑바닥에선 파다하다.
여권 한 인사의 논리를 들어보자. 그는 현재 권력체제 개편에 관해선 4년 중임 대통령제, 대통령은 외치를 국무총리는 내치를 맡는 이원집정부제,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로 남고 의회 다수당의 총리가 내각을 이끄는 의원내각제가 거론되고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상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친박계는 소수만 남게 되더라도 정당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개헌을 통한 권력체제 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때까진 가보자는 얘기다. 128명의 소속 의원 중 비주류 절반 이상이 나가더라도 나머지 절반으로 정당을 유지하며 국회 교섭단체로서 역할하고, 만에 하나 의원내각제가 되면 정당의 하나로 존재하며 친박 패권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은 비박계에서 지분이 꽤 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히자 곧 “대한민국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애국의 결단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권력을 독점하는 대통령제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하는 측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라며 “좌우 이념에서 벗어나고 보수 진보의 틀도 깨는 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당제 구조를 기반으로 연정하는 형태는 다수당이 총리를 맡는 의원내각제에서 볼 수 있다. 만약 친박계가 바라는 의원내각제를 비박계의 수장 격인 김 전 대표도 찬성한다면 향후 개헌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진척될지 알 수 없다는 게 어쩌면 친박계의 희망이기도 하다.
게다가 친박계는 아무리 죄가 크더라도 박 대통령을 붙들고 있어야 유지된다. 새누리당의 재산을 버릴 수 없다는 얘기다. 전국 대의원과 당원들, 시당과 도당 건물과 사무실, 각종 산악회 등 사조직과 대기업 등 후원세력은 현재 새누리당의 기득권이다. 소수 정당이 되더라도 친박이 탈당할 일은 없는 셈이다. 친박계 핵심 중진 의원은 “대통령의 탈당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이 보수정당이 극우정당이 되더라도 그 중심은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여기까지가 친박계가 버틸 수 있는 이유다.
반대로 비주류인 비박계는 왜 당을 뛰쳐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신천지당’으로까지 불리는 새누리당에선 정권재창출은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봤을 땐 불가능한 일인데 말이다. 비박계 한 재선 의원은 “비겁하게 당에 기생하는 느낌”이라면서도 “그래도 탈당은 겁이 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입과 같았던 친박계 이정현 대표가 총사퇴 요구에도 버티기에 나선 이유도 탄핵 불가 사수에 있다. 박 대통령 탄핵 이후의 거국중립내각을 위해선 여야가 동의하는 총리가 추천되어야 하는데 이 대표가 버티면서 총리에 대한 동의를 않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임명한 황교안 총리체제는 거국중립내각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지만 사실상 그 키는 이 대표가 쥐고 있는 것이다. 다음 총리를 임명하지 못한 박 대통령의 탄핵은 사실 그 나물에 그 밥이 된다.
반대로 비박계는 왜 탈당 후 탄핵을 주저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이 4,5%라면 비박계의 차기 주자로 꼽히는 김 전 대표나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중 5%가 되는 이가 없다. 이정현 대표가 이들을 향해 “다 합해도 10%가 되지 않는데 무슨 대권주자냐. 대권주자 타이틀을 다 내려놔라”고 큰소리 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탈당파가 믿고 따를 그들의 보스가 없는 셈이다.
정권재창출이 가능한 인물을 재임 기간 발굴하거나 육성하지 않았다며 질타를 받은 박 대통령이 이 국면에선 오히려 그 탓이 덕이 돼 방패가 되어주고 있다. 김 전 대표나 유 의원 등이 만약 홀로 10% 안팎의 지지기반이 있었더라면 그를 중심으로 한 탈당세력이 벌써 탄핵으로 가고도 남았다는 말이 있다.
탈당 이후 지지기반의 상실도 두렵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은 영남권, 즉 부산경남(PK)와 대구경북(TK)이다. 현재 비주류가 중심이 돼 모인 비상시국위원회엔 PK의 김 전 대표, TK의 유 의원을 빼면 다수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이나 강원권이다. 친박계 다수가 여전히 영남권을 사수 중인 셈이다.
만약 이런 탈당파가 국민의당과 합쳐져 제3지대로 갈 경우 영남권이 이들을 지지하겠느냐가 문제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지만 모두 무당파로 흘러갔을 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나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로 옮겨가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영남권은 죽어도 호남하고는 안 붙는다”는 것이 이들 탈당파의 걱정거리다.
특히 김 전 대표의 행보는 비박계로선 큰 걱정거리라고 한다. 김 전 대표는 비박계에서 탄핵의 선봉에 섰고, 이후 언론인터뷰 등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는 등 대척점에 섰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자신의 진퇴 여부를 국회에서 정해달라고 요구하자 탄핵의 깃발을 슬그머니 내려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결기를 보여도 모자랄 판에 그의 ‘30시간의 법칙(지난 총선 당시 정두언 전 의원의 말로 김 전 대표는 30시간이 채 되지 않아 입장을 번복한다는 의미)’이 탄핵 동력을 꺼버린 셈이다.
하지만 큰 화재가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절대 지지기반으로부터의 기(氣)를 받으려 했던 박 대통령도 싸늘한 분위기 탓에 10분 만에 회군하면서 탄핵의 동력이 살아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비박계가 달라진 영남권 텃밭의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정필 언론인
친박계 ‘비대위 체제보단 선대위 체제가 낫다’ 지금 새누리당은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다. 친박계는 친박 일색인 지도부를 중심으로 끈끈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비박계는 비상시국위원회라는 논의기구를 만들어 매일 공식 회의를 통해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양대 계파의 두 그룹 사이엔 계파에서 3명씩 나온 중진협의체인 ‘중진 3+3 회동’이 있다. 친박계에선 원유철 정우택 홍문종 의원이, 비박계에선 김재경 나경원 주호영 의원이 멤버다. 이 중진협의체에서 가장 최근에 도출된 합의안은 “비박계에서 3명의 비상대책위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그 중에서 한 명을 인선하자”는 내용이었다. 친박계가 비박계 추천 비대위원장을 수렴한 셈이다. 이에 비박계에서는 원외 인사로만 구성된 플랜A와 원내 인사를 포함한 플랜B를 도출해 냈다. 김형오 정의화 전 국회의장,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포함됐다. 하지만 친박계는 말을 바꿔 비대위원장 카드를 받지 않았다. 이정현 당 대표가 특정 계파가 추천한 비대위원장은 난세 속의 새누리당호를 지휘할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때문에 비대위원장 발굴에 골몰했던 비박계는 닭 쫓던 강아지 신세가 됐다. 문제는 이 ‘중진 3+3 회동’이 처음부터 양대 계파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지 않았던 데 있다. 비박계는 3명의 4선 의원을 자신들의 협상대표자로 인정했지만 친박계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친박계는 서청원 전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정갑윤 최경환 유기준 윤상현 의원이 실질적인 거중조정을 담당해왔다. 비박계로선 대표성이 담보되지 않은 친박 의원들의 이 ‘중진 3+3 회동’은 의미가 없다고 보고 기구 청산 작업에 들어갔다. 김재경 의원이 지난 1일부터 회동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와해상태다. 친박계는 온순 관리형 비대위원장을 선호하고 있다. 만약 강경 개혁형 비대위원장이 등장할 땐 사실상 ‘축출’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이다. 이는 이정현 대표 체제에서 실시된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최순실 사태와 관련된 각종 증인들의 출석을 친박계가 조직적으로 비토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친박계는 일부 대기업 CEO들의 출석도 막았다. 친박계 지도부가 상명하복의 수직적 당청관계를 이끌면서 최순실 사태를 견제하거나 방지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개혁형 비대위가 이런 잘못을 해당행위로 규정해 사실상 출당 조치를 시킨다면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사라진 당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류를 아는 친박계로선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는 것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 친박계로선 조기 대통령선거를 통해 곧바로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친박계의 맏형 격인 서청원 전 최고위원과, 친박계 돌격대로 통하는 조원진 최고위원이 각각 2월 퇴진과 4월 퇴진을 말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 궐위시에는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해 2월에 퇴진하면 4월, 4월에 퇴진하면 6월 대선이 가능해진다. 비대위보다는 선대위 체제로의 재편 가능성이 큰 것이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헌법재판소의 심판 기간(180일 이내)까지 비대위 체제가 불가피하다. 친박계 주류와 비박계 비주류의 각종 협상이 이렇게 접점을 찾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숨어 있는 것이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