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2017년 10월, 신길역에서도 장애인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한 ‘휠체어 리프트’에서 장애인들의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들은 ‘휠체어 리프트’가 위험하다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반면 혹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1동선 승강기’가 없는 지하철 역에서 장애인들은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1동선 승강기’는 승강기만 이용해도 지하철 승강장에서 지상으로, 또는 그 반대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서울시 지하철의 일부 역사엔 ‘1동선 승강기’가 없습니다. 장애인들은 지하철역에 ‘1동선 승강기’를 설치해달라고 수년째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철남’은 1동선 승강기가 없는 광화문역을 찾아 장애인들이 겪는 설움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에서 ‘죽음의 릴레이’가 연속되는 이유를 분석해 봤습니다.
서울 광화문역 사거리. 임준선 기자
지난해 10월 20일 한 아무개 씨는 신길역 1호선에서 5호선 환승을 위해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에 멈춰 섰습니다. 그는 호출 버튼을 누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호출 버튼은 왼손이 누르기 쉬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한 씨의 왼팔은 운동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때문에 오른손으로 버튼을 누르려고 휠체어를 앞뒤로 움직였습니다. 결국 그는 호출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계단 쪽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혼수 상태에 빠진 한 씨는 올해 1월 25일 결국 사망했습니다.
장애인들은 분노했습니다. 6월 14일 오전 10시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승하차 시위에 나선 까닭입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1호선 신길역에서 도착한 열차 한 칸에 줄지어 타고 다음 정거장에서 일렬로 내린 뒤, 그 다음 도착한 열차에 타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출근길이 늦어졌다면서 장애인들을 향해 고성을 내질렀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위에 나선 이유가 있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진은선 씨는 “시민들에게 ‘불편한데 무슨 짓을 하는거야’라는 말씀을 들었다”며 “하지만 우리처럼 리프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1동선 승강기가 없는 역에서 30분을 지체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10분이 불편할 수있지만 우리에겐 불편이 일상이다”고 전했습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신길역에서 사망한 한 아무개 씨에 대한 추모제를 열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신길역 환승 구간은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장애인들이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리프트를 이용해야 합니다. 진은선 씨는 “광화문역이나 신길역은 환승 구간이 길고 사람이 많은 곳이지만 승강장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역이 많아도 환승구간이 반대편이면 리프트만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리프트를 이용하면 자주 흔들리고 소리도 많이 나기 때문에 불안하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지하철 1~8호선의 277개 역사 중 신길역, 광화문역 등 27개 역엔 ‘1동선 승강기’가 없습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문애린 활동가는 “불광역 환승구간에도 엘리베이터가 없다. 최근에 불광역에서 리프트를 타려고 했지만 고장이 났다”며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역무원도 수리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결국 역무원을 포함한 성인 남성 4명이 저를 들어서 옮겼다”고 지적했습니다.
광화문역 8번출구(좌)와 엘리베이터
6월 19일 오후 4시경, 기자는 ‘1동선 승강기’가 없는 광화문역 사거리를 찾았습니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출구가 눈에 먼저 들어왔지만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헤매다가 세종문화회관 뒤편 8번 출구 쪽에서 엘리베이터를 겨우 발견했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지만 내부에는 ‘승강장’으로 가는 버튼은 없었습니다. ‘1동선 승강기’가 아닌 탓입니다. 결국 지하 2층 대합실에서 장애인 리프트를 찾았지만 안내판이 없었습니다.장애인들의 설움이 느껴지는 듯 했습니다. 비장애인들에 비해 ‘동선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 내부 모습(좌), 장애인 전용출입구.
가까스로 승강장 쪽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휠체어 리프트 점검표’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스위치, 전동기 등 18개 항목에 대해 리프트의 안전상태를 기록하게 돼 있지만 5, 6월엔 ‘빈칸’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이 점검표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찔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은선 씨는 “평소에 리프트를 타지 않으려고 동선을 짠다”며 “휠체어는 무게가 많이 나간다. 리프트를 탔을 때 비상상황이 생기면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높은 각도로 설치된 곳도 많아서 잘못하면 바로 추락할 수 있다. 덜컹거리면서 내려가기 때문에 무게를 버틸 만큼 안전한지, 타는 사람 입장에선 잘 모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점검표(좌)와 장애인 전용 개찰구
문애린 활동가도 “리프트를 탈 때마다 얼마나 위험을 느끼는지 모른다”며 “덜컹 거리기도 하고 혹시나 멈추면 계속 공중에 떠있어야 한다. 정말 무섭다. 리프트를 이용할 때마다 공포를 느낀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광화문역 장애인 리프트가 있는 곳과 승강장 쪽으로 이어지는 계단 아래쪽은 상당히 위험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호출’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리프는 장애인이 홀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역무원이 동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호출 버튼은 계단 바로 앞에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위치입니다.
장애인들은 버튼을 누르기 위해 휠체어를 계단 쪽으로 바짝 붙이거나, 고개를 숙여서 팔을 쭉 뻗어야 합니다. 진은선 씨는 “직원 호출 버튼은 정말 계단 바로 앞에 있다. 신길역 사고는 ‘조작미숙’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며 “이건 정말 운이다. 누구든지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요? ‘살인기계인 리프트를 철거하라’는 것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주장입니다. 바꿔 말하면,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승강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1동선 승강기’를 지하역에 설치하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을 하면서 2022년까지 모든 역에 1동선 승강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은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서울 광화문역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임준선 기자
실제로 서울교통공사는 2022년까지 ‘1동선 승강기’ 없는 27곳 중 11곳에만 승강기를 설치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16개 역은 구조 문제와 설치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설치를 검토 중입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16개 역은 환기시설 등 구조적 어려움이 있어 엘리베이터 설치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나왔다”며 “하지만 환기시설을 재배치해서 모든 역사에 1동선 승강기를 설치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도 “최대한의 방안을 많이 모색 중이다”며 “설치가 어려운 부분은 용역을 통해서 교통공사에서 노력하고 있다. 아직 4년의 기한이 남았기 때문에 진행 여부를 말씀드리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광화문역에서 보행 후 휴식을 취하는 장애인 모습. 임준선 기자
하지만 장애인들은 ‘서울시와 교통공사는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애린 활동가는 “지난 3년 동안 약 20개 역사 중에 ‘1동선 승강기’가 설치된 곳은 거의 없다”며 “광화문역도 환기시설 때문에 어렵다고 했는데 우리가 계속 요구한 끝에 최근에 설치를 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진은선 씨 역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서울시는 수년째 ‘계획이 있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며 “리프트에 고장이 생기면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30분을 돌아 집에 간다. 이건 장애인들한테 일상 1년에 한 번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상이다. 서울시가 같은 시민의 관점에서 우리를 봐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