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은 일종의 사립지방학교로서 조선의 핵심 이념인 성리학을 널리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학들이 세웠다.연합뉴스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다.”
세계유산에 오른 ‘한국의 서원’은 전국에 분포한 9개의 서원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이 그것으로, 모두 국가문화재인 ‘사적’으로 지정돼 있다.
사실 서원의 기원은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송나라 때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연 이래 남송과 원·명나라를 거치며 수많은 서원이 생겨났다. 하지만 중국의 서원과 한국의 서원은 그 성격과 기능에서 큰 차이가 있다. 중국의 서원이 주로 관리 양성을 위한 준비학교의 성격을 띠었다면, 한국의 서원은 지방 유림들이 모여 강론하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는 교류와 배움의 장소이자 선현을 기리고 추모하는 배향의 공간이었다. 성리학에서는 예를 중시하고 그 기본이 선현을 모시는 일이었기에 학교와 사당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한국 서원의 구조가 강당, 기숙사, 누각, 사우(사당) 등으로 구성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원에 제향공간, 강학공간, 교류와 유식(휴식) 공간 등을 유기적으로 배치하면서 한국의 서원만이 지닌 소박하면서도 조화로운 건축 양식이 발전할 수 있었다.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9개의 서원은 모두 ‘사액서원’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조선 말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살아남은 서원 47곳 중 일부이기도 하다. 사액이란 임금이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려주는 일을 뜻하는 것으로, 사액서원은 국가로부터 공인 받은 서원으로서 일반 서원과는 격이 다른 대우를 받았다.
이 중에서도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중종 임금 시절 풍기군수 주세붕이 이곳 출신의 고려 말 유학자인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백운동서원을 세운 것이 그 효시다. 그 후 명종 임금 때 ‘소수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내려 최초의 사액 서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소수란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학들이 세운 서원이다. 원래 이곳은 이황이 유생들을 가르치던 도산서당이 자리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도산서원이라는 사액은 선조 때 내려졌는데, 현판의 글씨를 쓴 이는 다름 아닌 한호(한석봉)다. 이황은 소수서원과도 인연을 맺고 있는데, 그가 풍기군수를 맡았을 때 백운동서원이 사액을 받을 수 있도록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강학당. 연합뉴스
도동서원의 경우엔 두 차례나 사액을 받은 진기록도 지니고 있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하기 위해 지방 사림에서 세운 서원으로 처음 이름은 ‘쌍계서원’이었다. 선조 임금 때 같은 이름으로 사액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다. 그 후 지방 사림들이 사당을 중건해 ‘보로동서원’이라 부르던 것을 선조가 다시 ‘도동서원’이라 사액하였고, 이 마을의 이름도 도동리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남계서원은 이황, 김굉필과 함께 ‘조선 5현’으로 꼽히던 ‘일두’ 정여창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옥산서원은 5현의 또 다른 일원인 ‘회재’ 이언적을 모시는 서원으로 이름이 높다.
필암서원은 호남 유림에서 ‘하서’ 김인후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고, 돈암서원은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무성서원의 경우 우리나라 유학자의 효시로 꼽히는 ‘고운’ 최치원과 태인 현감을 지낸 신잠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서애’ 류성룡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병산서원은 낙동강 백사장을 마주하고 있어 풍광이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선의 서원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나무는 다름 아닌 배롱나무다. 100일간 꽃을 피운다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는 나무껍질이 매우 얇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듯한 게 특징 중 하나. 선비들은 이 나무처럼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진실된 마음가짐을 강조하기 위해 서원에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혹시 길을 가다 배롱나무를 발견한다면, 한번쯤 서원과 선비정신을 떠올려보는 것이 어떨까.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