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건입동 사라봉 칠머리당에서 영등송별제가 봉행되고 있다. 이 굿은 해마다 ‘영등달’인 음력 2월 초하룻날 제주에 찾아왔다가 열나흗날 떠나는 ‘영등신’에게 풍어와 안전을 비는 무속 제례다. 사진=연합뉴스
“부도덕한 공양을 가치 있게 여기는 풍습이 있으며, 숲, 호수, 산, 나무, 돌 등의 신령을 받드는 제사가 이루어진다.”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서 유교적 시각으로 제주의 옛 풍속을 설명한 대목이다. 이러한 기록은 제주에서 여러 가지 제의적 활동이 이어져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섬이라는 독특한 자연 조건 속에서 제주 사람들은 예부터 삶의 원천인 바다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봄의 문턱에서 제주의 마을 심방(무당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들은 잔잔한 바다와 풍어를 기원하며 ‘바람의 여신’(영등 할망, 영등신), 용왕, 수호신 등에게 제사를 지내왔다. 제주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이와 유사한 무속 의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제주시의 작은 어촌인 건입동(속칭 칠머리)의 사당(본향당)에서 영등신에게 비는 제의 의식을 의미한다. 직접적인 기원의 대상은 바람의 여신이지만, 이뿐만 아니라 마을의 여러 수호신과 바다의 용왕에게 바치는 굿이기도 하다.
제주 사람들에게 영등굿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영등신은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바다를 휘저어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알려진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제주의 바다는 음력 2월 초부터 중순까지 특히 험난한데, 제주 사람들은 이 시기에 영등신이 섬에 와 머문다고 여겼다. 예부터 영등신이 지나가는 바닷가 조개류는 껍질만 남게 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이것은 영등신이 조개류의 속을 다 까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등신이 떠나는 날이 되면 영등신은 해안을 따라 씨를 뿌려주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며, 바다를 다시 맑게 해서 해조가 잘 성장하게 해준다고 여겼다. 따라서 제주 사람들에게 영등신이 섬에 머무는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이런 까닭에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칠머리당에서 굿을 벌여 영등신이 머무는 기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던 것이다.
용왕제. 사진=문화재청
영등굿이 치러지는 칠머리당에서는 영등신을 비롯해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이라는 부부신을 함께 모신다. 도원수감찰지방관은 지역민의 요구를 담당하는 신이고, 요왕해신부인은 어부와 해녀의 생계를 담당하는 신이라고 한다.
해마다 음력 2월 1일이 되면 칠머리당에서는 섬으로 들어오는 영등신을 모시는 영등환영제를 열고, 영등이 떠나는 2월 14일에는 영등송별제를 연다. 특히 용왕과 수호신에 대한 제사까지 포함하고 있는 영등송별제는 그 행사가 매우 화려하고 더욱 중요한 무속 제례로 여겨진다.
영등환영제는 신령을 불러 사당으로 들이는 의식이다.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행운을 비는 ‘초감제’로부터 시작하여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로 이어진 뒤 조상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3막 연희인 ‘석살림굿’으로 끝난다.
영등송별제도 역시 초감제로 시작하지만, 여기에는 마을의 수호신이자 부부 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요왕해신부인에게 마을의 안녕을 축원하는 의례가 포함돼 있다. 이 제례에서는 3명의 고을 관리가 부부 신에게 술을 올리며 마을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빈다.
배방선. 사진=문화재청
그 다음에 모든 신에게 술과 떡을 권하여 올리는 ‘추물공연’, 용왕과 영등신을 맞이하여 풍어와 어부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요왕맞이’, 수수의 씨로 점을 치고 해조류의 씨를 뿌리는 행사인 ‘씨드림’이 이어진다. 그 뒤에 수탉을 던져 마을 전체의 재앙을 막기 위한 ‘도액막음’을 한다.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해녀들을 위해 점을 치는 순서도 있다.
굿을 마무리하면서 마을의 노인들이 바다에 짚으로 만든 배를 띄워 보내는 ‘배방선’이 진행된다. 이는 영등신을 제물을 실은 배에 태워 보내는 과정이다. 배방선 이전에는 ‘영감놀이’라는 ‘굿중놀이’가 연행된다. 영등송별제의 마지막은 여러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으로 맺는다.
영등굿에는 심방 이외에 해녀와 선주 등이 참여하는데 이들은 음식과 공양물을 지원한다. 영등굿은 제주만의 독특한 제례의식이자 섬사람들에게 일체감을 심어주는 특별한 문화축제다. 또한 섬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바다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하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인류의 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