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58] 취타 악기로 빚어내는 장쾌한 기상의 전통 행진곡
대취타란 ‘크게(大) 불고(吹) 두드린다(打)’는 뜻으로, 왕이나 귀인의 행차, 군대의 행진 등에서 취고수(관악기 및 타악기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음악을 말한다. 대취타는 ‘행진곡’풍의 음악답게 음량이 큰 악기 중심으로 연주된다. 커다란 소라 껍데기로 만든 나각, 금속으로 만든 긴 대롱 모양의 나발 등 한 음정만 내는 관악기를 비롯해 징, 자바라, 용고(통에 용 그림이 그려진 북)와 같은 타악기가 사용된다. 여기에 멜로디를 담당하는 악기로는 유일하게 태평소가 함께 편성되어 곡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태평소의 자유로운 가락과 나각 및 나발의 웅장한 음색, 그리고 타악기의 울림이 어우러져서 장쾌하고 드높은 기상을 나타낸다.
고취악(타악기와 관악기가 중심이 되는 음악)의 전통은 삼국시대의 군례 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벽화(안악 제3호분 벽화)의 ‘대행렬도’나 백제의 악기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취고수들이 연주하는 행진음악이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는 뿔나팔을 부는 ‘취각군’과 취타 악기를 다루는 ‘취라군’이 조직돼 국가 의식이나 군대 행렬에 참여하였으며, 이러한 전통이 조선시대에 대취타 연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대취타 연주에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음량이 큰 악기들로 편성된 취고수 행렬 뒤에 향피리, 해금 등 비교적 음량이 적은 악기를 연주하는 세악수(細樂手)들이 딸려 합주를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일본을 오가던 조선통신사 행렬에도 취고수와 세악수로 편성된 100여 명의 악대가 포함되어 웅장한 음악과 이색적인 볼거리를 선사하기도 하였다. 현재의 대취타는 전통적인 악기 편성이 축소된 채 취타악 위주로 그 전통을 이은 것이다.
대취타는 ‘무령지곡’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대취타의 유일한 연주곡 이름이기도 하다. 10분 정도의 길이를 지닌 이 곡은 일반적으로 우리 전통음악이 3박자인데 반해 2박자가 한 단위로 돼 있어 행진을 위해 작곡된 곡임을 짐작케 한다.
대취타는 황색 옷을 입고 허리에 남색 띠를 두른 채 머리에 꿩 깃털이 달린 초립을 쓴 독특한 복색의 군악수(취타와 세악을 연주하는 악사를 함께 이르는 말)들에 의해 연주된다. 지휘자 격인 집사가 지휘봉이라 할 수 있는 등채를 양손에 받쳐 들고 “명금일하(鳴金一下) 대취타(大吹打)하랍신다!”(징을 한 번 울려 대취타를 시작하라는 뜻)라는 특이한 호령으로 음악의 시작을 알린다. 이 호령에 따라 징을 울리고 북을 치면 모든 악사가 일제히 연주를 시작한다. 비교적 단출한 편성으로 곡이 연주되지만 매우 씩씩하고 우렁차며 장엄한 느낌을 준다. 대취타를 그치는 것도 집사의 몫이다. 그가 “훤화금”(喧譁禁)이라고 호령하면 모든 악사가 연주를 멈추게 된다. 정조 때 편찬된 군사교련 책인 ‘예진총방’에 따르면 징을 두 번 쳐서(鳴金二下) 대취타를 시작하고, 징을 세 번 쳐서(鳴金三下) 대취타를 그치게 하기도 했다.
고종 때까지 계속 이어져온 대취타의 전통은 일제강점기 들어 단절의 위기를 맞는다. 한말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된 이후에는 대취타가 형식을 갖추어 연주된 적이 없으며, 일제는 다른 우리 무형유산과 마찬가지로 대취타의 연주를 금지했다. 광복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민간의 광고 악대 연주나 사찰의 의식에 이따금 사용될 뿐, 대취타는 거의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취타가 최초로 재연된 것은 1961년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때였다. 기념 군장 행렬에 국립국악원 취타대 52명이 편성, 운용되어 역사적인 대취타 연주를 한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71년에 들어서야 대취타는 국가무형문화재(당시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될 수 있었다. 대취타는 초대 기능보유자인 고 최인서 선생이 1978년 작고한 이후 정재국 현 보유자(1993년 지정)가 ‘피리정악및대취타보존회’를 만들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또 1998년에는 ‘대취타’에서 ‘피리정악 및 대취타’로 문화재 명칭이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재국 보유자는 피리정악 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피리와 태평소의 명인이기도 하다.
대취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군례악이라 할 수 있다. 2017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때, 또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 공식 환영식에서 연주된 음악 중 하나가 바로 대취타였다. 대취타는 우리 선조들의 기개를 한층 더 느끼게 해주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특색 있는 복식 등 볼거리를 함께 전해주는 일종의 ‘행위음악’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자료협조=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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