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 대 1 뚫고 최민식 상대역 낙점 “함께한 매순간이 에피소드”…“20대 중반에 10대 학생 연기, 동안 덕 봤죠”
무려 250 대 1이었다고 했다. 소속사도, 쟁쟁한 필모그래피도 아직 갖추지 못했던 무명의 배우가 스크린에 오를 확률이자 경쟁률이 말이다. 상업영화의 단역과 단편영화를 통해 조금씩 연기의 폭을 넓혀나간 배우 김동휘(27)는 3월 9일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개봉을 앞두고도 여전히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상업영화의 첫 주연을 맡은 것, 그만한 경쟁률을 뚫은 것, 그리고 상대역이 최민식이라는 것까지 모든 것이 비현실의 연속이었다.
“그때 오디션장에 가니까 저와 다른 한 분만 소속사가 없었더라고요. 그래서 ‘역시 이런 곳은 아직 내가 오기엔 이른 곳이구나. 좀 더 나를 더 만든 뒤에, 내가 이런 오디션을 볼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디션장 안에 최민식 선배님이 계시니까 이 기회에 연기를 보여드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임했거든요. 그런데 캐스팅 결과를 받고 나서는 정말 실감이 안됐어요. 엄마 아빠와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의구심이 들더라고요(웃음).”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김동휘는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유명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에 입학했지만 수학 성적의 하락으로 고민하는 고교생 한지우를 연기했다. 중학교에서 난다 긴다 하는 학생들이 모인 데다, 돈 있는 집안이면 족집게 과외에 교사와의 짬짜미를 통한 성적 조작까지 이뤄지는 곳에서 전학까지 권유 받으며 고민 많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청춘이다.
“이 친구가 그래도 자사고를 다니고 있는 데다 수학을 빼면 다른 성적은 잘 나오잖아요. 자사고를 갔다는 건 공부를 꽤 잘했다는 말이거든요. ‘나도 이제 인텔리한 캐릭터를 맡아보게 되는구나! 똑똑한 캐릭터를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딱 봤을 때 고등학교를 다니는 애라는 느낌을 주려고 제가 졸업한 학교를 기웃거리며 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관찰해서 캐릭터를 따왔어요. 지우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여드름도 마찬가지예요. 실제 고등학생을 표현하려고 분장팀과 함께 노력했죠.”
가장 생기발랄해야 할 시기에 학업 문제와 어려운 가정 형편, 생계를 책임지는 홀어머니에게 이런 사실을 말할 수 없는 고뇌로 시들시들해진 10대 청소년의 모습을 그린 듯이 잘 표현해 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촬영 당시 배우의 나이가 25~26세였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약 열 살 가까이 어린 캐릭터를 위화감 없이 연기했다는 게 된다. 실제로 나이를 알고 놀란 관객들도 꽤 있었다는 후문이다.
“동안이라는 강점이 이 영화에 잘 반영됐죠(웃음). 사실 옛날엔 스트레스였어요. 학교 다닐 때 자주 들었던 소리가 ‘귀엽다’ ‘애기 같다’였는데 이게 별로였거든요. 청소년기니 나도 남자가 되고 싶고, 멋있게 봐줬으면 좋겠는데 왜 맨날 귀엽다고만 하지? 이렇게 싫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그게 좋은 거더라고요(웃음). 20대 후반이지만 10대를 연기할 수 있잖아요. 또 학생을 맡아 연기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이라고 다 같은 학생은 아니거든요. 그런 차이점을 디테일하게 표현해 나가는 게 제 숙제이자 목표인 것 같아요.”
하루를 고민으로 보내고 있는 지우에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멘토 이학성(최민식 분)은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경비로 일하고 있던 탈북민 출신의 천재 수학자다. 학성은 기숙사에서 쫓겨난 지우와 우연히 마주쳤다가 그의 수학 문제를 풀어준 것을 계기로 사제 아닌 사제 관계를 맺게 된다. 퉁명스러운 북한 사투리로 틱틱대며 밀어대던 그가 아들 같은 지우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관객들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저 시험을 잘 보고 좋은 대학에 가서 괜찮은 직업을 얻기 위한 도구로서의 수학이 아닌 학문 그 자체로서의 수학의 매력을 알려주는 학성에 대해 김동휘는 “제가 학창시절에 이학성이란 멘토를 만났다면 저도 수학을 열심히 했을 것”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연기적 멘토’가 됐을 최민식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그저 영광이었죠. 선배님은 제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연기적 조언을 해주시기보단 친밀하게 다가오려고 노력해주셨어요. 현장에선 정말 호랑이 같으신 분인데,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라 포효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압도되는 느낌이에요. 연기를 안 하실 땐 주변인들과 너무 잘 지내시고 먼저 농담도 많이 해주시고, 편하게 해주시려고 노력을 많이 하세요. 저는 선배님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에피소드였던 것 같아요. 너무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에 현장에 가서 한 번이라도 더 얘기하고 말씀을 나누려고 애썼던 기억이 나요(웃음).”
‘대배우’로 꼽히는 최민식과 함께 첫 상업영화 주연 데뷔를 무난하게 해낸 김동휘는 올해로 데뷔 8년 차를 맞았다. 2014년 영화 ‘상의원’의 단역으로 데뷔한 뒤 2018년부터는 ‘노마드’ ‘하고 싶은 아이’ ‘피터팬의 꿈’ 등 단편 영화와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약해 왔다. 2020년에는 tvN 드라마 ‘비밀의 숲2’에서 통영 익사사고의 유일한 생존자 김후정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로 대중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도 했다. 대학입학 수시에서 탈락했을 때 잠시 연기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단 한 번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랬기에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준 기회가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20대까지 ‘내가 상업으로 데뷔할 수 있을까, 그런 작품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방황하고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저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금 빨리 왔을 뿐이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본인이 준비가 돼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제 목표는 장편영화였지만 그걸 생각하면서도 내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된다면 그걸 충분히 수행해낼 수 있을까, 했을 때 저는 그 당시에 ‘아니’였거든요. 그래서 학교 다니며 더 공부하고 연기하려 노력하고, 배우 분들이 하는 인터뷰며 연기 영상까지 보며 정말 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해 봤던 것 같아요.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는 제가 감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계속 해 나간다면 기회는 오니까 그 기회를 잘 잡으셨으면 좋겠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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