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9일 화창한 봄날 김길자 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아침에 학교 간 고등학교 1학년 아들 재학이었다.
"엄마, 나 지금 친구 집인데 무서워서 혼자 못 가겠어요."
어머니는 곧장 아들을 데리러 나섰다. 나와 보니 총을 든 군인들이 가득하고 거리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군인들의 눈빛엔 살기마저 느껴지는데 불길한 예감에 아들을 만나자마자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멈췄다. 시외전화가 끊기고 기차와 버스는 전부 통제됐다. 그렇게 고립된 도시에서 ‘인간사냥’이 시작됐다. 군인들이 거리의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구타했다.
눈이 터지고 머리가 깨지고 피범벅이 된 시민들이 병원 곳곳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도시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와중에 아들 재학이가 사라졌다.
며칠 만에 걸려 온 아들의 전화에 어머니는 또 한 번 충격에 빠지고 만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뜨거운 외침은 사그라지지 않고 짙은 최루탄 연기를 뚫고 울려 퍼졌다.
그리고 다가온 마지막 항전의 날 200여 명의 시민이 도청에 남았다. 그리고 각자 최후의 순간을 준비하는데 이들이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980년 5월 영원히 식지 않을 뜨거운 그날과 '오늘'을 있게 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중 조명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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