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논란? 이란 공포증 해소에 주도하는 축구 선보여…김승규만 선호? 조현우도 A매치 13경기 출전
#성과가 없었지만 임기를 채워줬다?
벤투 감독은 4년 하고도 100일이 넘는 기간(브라질전 기준 4년 104일) 동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단순 최장기 감독을 넘어서 독보적인 기록이다. 2위(울리 슈틸리케, 2년 265일)와 2년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벤투 감독이 모두 좋은 성과만 거둔 것은 아니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기대 이하의 결과였지만 부임 초기였고 월드컵이라는 목표가 남아 있었기에 큰 평가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월드컵 예선전 결과 덕분이었다. 2차 예선을 무패로 통과한 데 이어 3차 예선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대표팀은 12년 만에 본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지었다. 지난 두 번의 월드컵 예선 기간, 대표팀은 마지막 경기까지 가슴을 졸이며 타 구장 상황도 지켜봐야 했다.
대표팀이 오랜 기간 앓아온 이란 공포증도 해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대표팀은 유독 이란과 주요 길목에서 자주 만났지만 최근 10년간 이란전서 웃지 못했다. 그러나 벤투 감독 체제에서 이란을 상대로 1승 2무를 거뒀다. 월드컵 예선 2경기 중 테헤란 원정에서 12년 만에 골맛을 보며 무승부를 기록했고 홈에서는 2-0으로 완승했다. 그에 앞서 열린 친선전에서도 1-1 무승부로 자존심을 지켰다.
단순히 결과만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경기 내용면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으로서 벤투 감독 선임을 주도한 김판곤 현 말레이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이 "'주도하는 축구'를 원한다"고 밝힌 대로 벤투호는 이전과 다른 축구를 선보였다.
#편애가 심하다?
벤투 감독은 재임 기간 동안 '특정 선수만 고집해서 기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와 관련해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벤투 감독이 어느 정도 자신의 스타일을 밀고 나가는 면은 있다"면서도 "지도자라면 누구나 취향이 있고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감독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벤투 감독이 받았던 많은 지적 중 하나는 '김승규만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부임 직후 공식 대회인 아시안컵 기간을 제외하면 1년 이상 골키퍼 포지션에 김승규와 조현우를 번갈아 기용했다. 벤투 체제에서 조현우는 A매치 13경기에 나섰다. 이외에도 구성윤, 김동준, 김진현, 송범근, 이창근 등이 골문을 지키기도 했다.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음에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이를 두고 벤투 감독은 선발하는 선수 폭이 좁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약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92명의 선수를 선발했다. 폭이 적다고 하기엔 적지 않은 숫자다. 슈틸리케가 약 2년 9개월 재임기간 67명을 선발한 것과 비교해도 폭이 좁다고 할 수 없다.
월드컵 개막 직전에는 이강인 기용을 놓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강인의 월드컵 엔트리 합류를 놓고도 비관적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이강인을 적극 기용하며 효과를 봤다. 이강인은 4경기에서 모두 경기장을 밟았고 선발로도 1회 출전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벤투 감독은 이전 평가전에서 투입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 이강인을 구상에 넣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빌드업 축구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경기 스타일에는 '빌드업 축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빌드업'은 팀이 공격 전개를 하는 과정을 지칭할 뿐 이는 짧은 패스가 될 수도, 긴 패스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벤투 감독의 전략은 김판곤 감독이 언급한 '주도하는 축구'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강팀을 상대로도 수비 시 내려서서 수동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높은 지역에서 압박을 통해 상대 실수를 유발했다. 공격을 진행할 때는 점유율을 높이며 기회를 노리는 방식을 택했다. 상황에 따라 패스 길이는 달라질 수 있었다.
'짧은 패스만 고집한다'는 편견과 달리 대표팀은 롱패스 활용도가 낮지 않았다. 월드컵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 가나전을 살펴보면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한 정우영과 황인범은 각각 8개와 7개의 롱패스를 시도했다. 김민재와 김영권으로 구성된 중앙수비진에서는 27개의 롱볼이 나왔다. 골키퍼 김승규도 7개의 롱패스를 시도, 71%의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
한국 축구는 쉽지 않아 보였던 월드컵 원정 16강이라는 고지에 12년 만에 올랐다. 명확한 목표와 프로세스를 가지고 4년간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경험을 얻었다. 이 같은 경험이 향후 대표팀의 움직임에 어떻게 적용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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