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1년 맞아 평산책방 열고 영화 개봉하고…“5년간의 성취 무너져 허망” 발언 완성본에선 빠져
5월 10일 개봉하는 ‘문재인입니다’(감독 이창재‧제작 엠프로젝트)는 제19대 대통령으로 5년의 임기를 마치고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에서 살아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일상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퇴임 이후 처음 공개되는 평산마을에서의 일상과 문 전 대통령의 속내를 확인할 수 있는 인터뷰, 오랜 기간 그와 동고동락한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제작진은 완성된 영화의 개봉을 알리는 순간부터 ‘사람 문재인’에 주목한 작품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치인’이나 ‘전임 대통령’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를 중심에 둔 휴먼 다큐멘터리라는 설명이다. 제작진의 완곡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입니다’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퇴임하고 꼭 1년이 지난 시점에 공개되는 데다, 아무리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전임 대통령이라는 존재감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초 11일로 예정됐던 개봉일을 하루 앞당겨 10일로 변경한 부분 역시 정치적인 해석을 낳는다. 5월 10일은 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자,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을 맞는 날이다.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에 맞춰 개봉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다큐멘터리가 과연 정치권 안팎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어떤 이야기 담았나
‘문재인입니다’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사저 앞마당에 어떤 식물을 심을지를 두고 김정숙 여사와 옥신각신 다투고, 한여름 반바지 차림으로 평상에 드러누워 음악을 듣는다. 반려동물들과 보내는 일상은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변호사 시절 문 전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 동료들은 물론 청와대 시절을 함께했던 주변인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상조 전 정책실장,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을 비롯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등이 풀어내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회고다.
무엇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제작진의 인터뷰는 이번 작품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이다. 제작진은 2022년 10월 이틀에 걸쳐 약 10시간 동안 문 전 대통령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편집해 영화에 담았다. 문 전 대통령은 10시간에 이르는 인터뷰 내용 가운데 어떤 부분을 영화에 넣을 것인지 결정하는 ‘편집 권한’을 제작진에 전적으로 일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을 앞두고 제작진의 바람과 달리, ‘문재인입니다’가 정치적으로 해석된 일도 있었다. 4월 말 이창재 감독과 프로듀서인 김성우 다이스필름 대표가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영화 제작 과정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나눈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공개하면서다.
당시 방송에서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5년 동안 이룬 성취, 제가 이룬 성취라기보다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함께 성취한 것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즉각 기사화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문 전 대통령의 심경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작품이 공개되기 전부터 이슈가 확산되자 제작진은 “해당 발언은 영화 본편에 담길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선을 그었고, 실제로 완성본에서는 빠졌다. 대신 영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대해 “대통령의 선한 의지가 배신당했다”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왜 다큐 제작을 허락했을까
‘문재인입니다’의 이창재 감독은 2013년 ‘길 위에서’, 2014년 ‘목숨’ 등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한 인물이다. 특히 2017년 ‘노무현입니다’를 통해 비주류 정치인이자 만년 ‘꼴찌후보’인 고 노무현 대통령이 치열한 경선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을 담아 185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이번 ‘문재인입니다’는 ‘노무현입니다’에 이어 전직 대통령이자, 극적인 스토리를 지닌 정치인을 조명한 연작이다.
이창재 감독이 ‘문재인입니다’를 처음 구상한 시기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당선을 예고한 2017년 대선 개표 방송을 본 직후다. 전임 대통령의 탄핵, 국정농단 사태에 따른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대통령이란 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출발은 드라마틱했다. 이후 감독은 2018년부터 문 전 대통령 측에 기획서를 여러 차례 보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 문 전 대통령이 다큐 제작을 수락한 시기는 퇴임 후인 2022년 8월경이다. 정치인이 아닌 인간 문재인에 주목하겠다는 제작진의 기획의도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열린 시사회 자리에서 이창재 감독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본 이들이었지만 인간적 면모가 다른 부분이 많아 그 점을 부각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밝혔다. ‘정치’보다 ‘인물’에 주목한 휴먼 다큐멘터리라는 사실도 재차 강조했다. “휴먼 다큐를 만들고 싶었기에 꼭짓점에 있는 많은 이야기, 쉽게 화제를 만들 수 있는 이야기는 완전히 배제했다”는 감독은 “5년 후에 봐도 10년 후에 봐도 큰 무리 없이 이해되고 공감되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14억 모금 열풍, 상영관 확보로 이어질까
‘문재인입니다’는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개봉 자체만으로도 여러 정치적인 시선을 제기하는 가운데 영화 시사회 등을 목적으로 진행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액인 3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어 총 14억 8783만 원 모금에 성공했다. 3만 4036명이 후원에 참여했다. 뜨거운 열기다.
크라우드 펀딩의 인기는 개봉 전 예매율로도 직결되고 있다. 개봉을 이틀 앞둔 5월 8일 오후 4시 현재 예매율은 10.3%(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예매관객수는 2만 7477명이다. 개봉 첫 주에 가뿐히 100만 관객을 돌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에 이어 3위다. 같은 시기 개봉하는 신작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문재인입니다’ 개봉 즈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외 활동에 돌입한 점도 눈에 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교묘하게 시기가 맞물려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4월 26일 사저 인근에 마련한 평산책방의 문을 열었다. 개점 일주일 동안 다녀간 방문객만 1만여 명, 판매된 책은 5582권이나 된다. 문 전 대통령은 하루에 한 번씩 책방을 찾아 방문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의 퇴임 1주년,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1주년에 맞춰 극장가와 평산책방에서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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