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 가로막아 도시 경쟁력 잃어” vs “구도심 활성화 측면 고려해야”…10~20년 장기적 검토 필요성 제기도
서울시가 ‘서울시 문화재 보호조례’에 규정된 높이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을 추진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일 최응천 문화재청장을 만나 서울시 문화재 인근에 필요에 따라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에 영향을 주는 조례를 개정할 때 문화재청장과 협의해야 한다. 기존 조례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 주변 100m 이내에서 개발할 때 건물 높이를 일률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적용 대상은 경복궁, 숭례문 등 4대문 안의 국가지정문화재와 4대문 밖의 국가지정문화재 및 서울시지정문화재 등이다.
문화재청은 “‘서울시 문화재 보호조례’ 높이 기준 완화에 대해 서울시의 공식적인 협의를 요청받은 사실이 없다”며 “문화재청장과 서울시장 면담시 ‘도심재정비를 위한 문화재 주변 건축 높이 규제 완화’에 대한 서울시의 건의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공식협의 절차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문화재청은 서울시 건의에 대해 건축 높이 규제 완화에 따른 문화유산의 역사문화환경 훼손이 불가피한 만큼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규제 완화가 문화재 경관을 해쳐 오히려 도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덕만 문화재지킴이연합회 회장은 “문화재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는 것은 땅을 그만큼 깊이 파야 한다는 것인데, 문화재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기의 흐름이나 수맥이 바뀔 수 있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문화재는 경관적 의미가 정말 중요한데 높이 규제를 완화하려 한다면 이런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팀장은 “문화재를 올려다봤을 때 경관을 해치는 것이 없어야 하는데 동대문이나 남대문, 풍납토성 같은 곳은 건물이 사선이라 주변 건물 높이 규제를 완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어떤 곳들은 자기 집이나 건물을 손해봐가면서 규제를 적용받아왔는데 오세훈 시장 임기 때 잠깐 그랬다가 시장 바뀐 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상황이 애매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또 규제 완화가 되면 난개발을 해서 토건 위주 사업을 벌일 텐데 이는 기후 위기 시대에도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서울시는 이미 타 지역들에 비해 문화재 주변 규제와 관련해 가장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데 여기서 높이 규제 완화 혜택도 보겠다는 건가”라며 “문화재나 궁궐 등을 볼 때는 경관도 함께 감상하는 것인데, 개발 중심으로 가버리면 도시가 특색을 잃어 망가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각 지자체는 문화재 외곽경계에서 일정거리까지 보존지역으로 설정해 건축 제한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국가지정문화재 100m, 시 지정 문화재는 50m까지 보존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경기도는 국가지정문화재 500m, 도 지정 문화재는 300m까지 보존지역으로 두고 있다. 이 밖에도 대부분 자자체에서 일률적으로 500m가 적용되고 있으며 주거·상업·공업지역은 200m, 녹지지역 등은 500m(일부 시도 지정문화재는 300m)로 범위가 지정돼 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주변은 높이 규제를 엄청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문화재를 보존하는 게 도시 경쟁력에도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문화재 가까이 고층건물이 세워진다면 도시가 가지고 있는 귀한 자산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 반대보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문화재 높이 규제 완화를 추진할 때 조망권 등을 고려해 대책을 세울 테고, 그런 대책이 잘 세워진다면 아주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문화재 근처 건물에 엄격한 높이 규제가 있었지만 사업지에 따라 도시 경쟁력, 도시 경관, 구도심 활성화 등 측면에서 검토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무조건 안 된다는 것보다 충분히 논의를 거친 후에 결정해도 된다”고 말했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문화재 주변 건물 높이 규제 완화에 대해 급하게 결정하면 문화재 가치가 훼손되는 등 손해를 볼 수 있다”며 “3~4년 안에 결정하기보다 10~20년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시 문화재정책과 관계자는 “문화재청에 공식협의 요청을 하는 것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바가 없으며 높이 문제도 다른 부서들과 협의를 통해 문화재마다 다르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문화재 보호, 시민 불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반대하는 시민들의 여론도 수렴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향후 서울시에서 높이 기준 완화를 반영한 ‘문화재보호조례 개정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협의 요청이 오면, 문화재위원회 의견 청취 등의 절차를 거쳐 문화유산의 역사적·경관적 가치와 역사문화환경 보호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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