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 갔더니 ‘차정숙’ 연호, 저도 놀랐죠”…‘유랑단’으로 가수 활동 “호피무늬 또 입을 줄이야”
“저는 진짜 그게 너무 기쁜 포인트인 거예요. 얼마 전에 고려대학교 축제를 갔는데 거기 모인 학생들이 막 함성을 지르면서 ‘차정숙!’ 그러더라고요(웃음). ‘앗, 맞아! 나 차정숙이야!’ 싶고, 너무 기쁘고 반가운 나머지 ‘너네도 차정숙을 봤단 말이야?’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아이들까지 재미있다고 해주니까 남녀노소가 다 보고 즐거워해 주셨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모든 세대의 이야기가 다 들어있어서 각각의 입장에서 좋아해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저희 경비아저씨도 좋아하신다고 그러시더라고요(웃음).”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보내고 일요신문과 만난 엄정화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다. 촬영 완료 후 편성까지 꽤 다사다난했던 작품이 기대 이상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매주 주말이 기다려졌다는 그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기에 막방이 있던 주에는 “이번 주가 안 왔으면 좋겠다”며 투정까지 부렸다는 엄정화의 얼굴엔 그래도 한 작품을 또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후련함도 뒤섞여 있었다.
“저는 마지막 화에서 정숙이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어요. 살면서 문제에 맞닥뜨리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걸 이 작품이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내가 태어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구 때문에,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위해 온전히 살아가는 것. 그래서 저는 이 결말이 오롯이 자기가 시작했던 자기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점에서 좋았어요.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찾는 게 진정한 행복 아닐까요? 막막한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응원이 돼 줄 것 같아요.”
‘닥터 차정숙’은 오랜 전업주부 생활을 뒤로하고 20년 만에 의사 가운을 다시 입게 된 가정의학과 1년 차 레지던트 차정숙의 성장기를 그린 작품이다. 엄정화가 연기한 차정숙은 의대 재학 중 속도위반으로 임신하면서 그의 앞에 놓인 의사로서의 탄탄대로를 뒤로한 채 가정으로 향해야 했던 인물이다. 사회에서는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정에서는 전업 주부에 대한 무시를 경험하면서도 좌절을 딛고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차정숙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저 역시 차정숙이 20년 동안 주부로 살다가 자기 자신을 다시 찾는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대중들이 작품에 많이 공감할 수 있고, 또 저희의 이야기가 대중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길 바랐기 때문에 차정숙이 따뜻하고 긍정적인 캐릭터라는 게 더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경력이 단절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그 상황에 많이 공감하면서 대리만족이랄까, 자기 스스로에게도 (자신을 찾도록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뒤늦게나마 잊고 있었던 꿈을 향해 달려가던 차정숙은 자신 몰래 대학시절 첫사랑 최승희(명세빈 분)와 내연 관계를 이어가고 있던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의 불륜 사실을 알고 또 한 번의 큰 좌절을 겪게 된다. 두 명의 ‘괜찮은 여자’를 오가며 혼자만 행복한 불륜 라이프를 만끽하는 서인호는 악역이 없는 이 드라마에서 유일한 시청자들의 ‘욕받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한편으론 이 작품의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가 “대체 서인호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잘난 여자들을 쥐락펴락하려 드냐”는 것이었던 만큼, 이 질문을 엄정화에게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터뷰 내내 같은 질문을 받았다는 엄정화는 “저도 그게 궁금하다. 대체 왜 좋아하는 거냐”며 분통과 폭소를 한 번에 터뜨렸다.
“진짜 궁금해 죽겠어요(웃음). 제 생각엔, 아마 정숙이는 처음부터 서인호를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지만 (상대가) 주지 않는 사랑 탓에 포기한 부분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정숙이는 인호를 계속 좋아하면서 살았겠죠. 인호는 애들 아빠이기도 하니까요. 아마도, 정 때문에(웃음)? 저였다면 남편이 바람피우면 얄짤 없어요! 제 심정으론 정숙이가 로이 킴(민우혁 분)이랑 같이 갔으면 했는데 안 그래도 (이)효리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언니, 젊은 로이를 만나!’ 자긴 이제 결혼했으니까 저로 대리만족이라도 하겠다고(웃음).”
극 중에선 불륜남녀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워가지만, 현장에선 더 화기애애할 수 없을 만큼 친한 사이였다는 귀띔도 이어졌다. 특히 ‘닥터 차정숙’ 촬영에 들어가기 전 명세빈의 신인보다 더 뜨거운 열정에 한 번 놀라고, 촬영에 들어가고 나서는 김병철의 혼을 불태운 ‘하남자’(상남자의 반대말 신조어) 연기에 또 놀랐다는 게 엄정화의 이야기다.
“(명)세빈이와 저는 연차가 엄청 된 배우들이잖아요(웃음). 세빈이도 1990년대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서로 함께 같은 것을 느끼는 동료애 같은 게 많아서 그런지 세빈이가 이 작품을 얼마나 열심히, 잘하고 싶어하는지 정말 잘 느껴지더라고요. 같이 모여서 대본 리딩을 한 뒤에도 제게 전화해서 한 번 더 하자고 말해주고, 그렇게 많은 연습을 했었어요. 그래서 최승희가 더 잘 표현되고 드라마도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또 (김)병철 씨는 처음에 이분이 어떻게 서인호를 연기할까 궁금했었어요. 이분의 연기가 공분을 사는 만큼 또 공감을 사는 포인트가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웃음). 어떤 시청자 분들은 인호의 상황 자체를 보시며 화를 내시면서도 이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재미있는 요소가 되겠다 싶었죠.”
‘닥터 차정숙’이 방영되는 기간 동안 배우 엄정화로 활동하는 시간은 가수 엄정화로 활동하는 시간과도 겹쳤다. 5월 25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tvN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에서 김완선, 이효리, 보아, 화사 등 각 세대를 대표하는 디바들과 함께 전국 투어 콘서트를 해낸 엄정화는 다시 서게 된 무대에 감격하면서도 이런 날이 다시 올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가수로서 활동하는 것은 2016년 발매한 10집 ‘더 클라우드 드림 오브 더 나인’(The Cloud Dream of the Nine)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짐작했다는 것이다.
“제가 10집 타이틀 곡 ‘드리머’(Dreamer)로 활동할 때 거의 10년 전에 사용했던 인이어 모니터를 꺼내 썼었거든요. 활동 끝나고 그걸 다시 서랍 안에 깊숙이 넣어 놓으면서 ‘이제 다신 쓸 일이 없겠지’ 했는데 2020년에 환불원정대랑 ‘호피무늬’로 활동하게 되니까 그걸 또 다시 꺼내게 되더라고요(웃음). 그 활동도 끝난 뒤엔 ‘이젠 정말 너를 만날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했는데 이번엔 ‘댄스가수 유랑단’으로 또 꺼내게 됐죠(웃음). 사실 ‘호피무늬’가 끝났을 때 신곡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걸 언제 공개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지금 ‘닥터 차정숙’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걸 생각하면 ‘좀 서두를걸, 올해 냈으면 좋았을걸!’ 싶었죠(웃음).”
드라마 홍보부터 무대 활동까지 또 다시 쉼 없이 달리는 엄정화에게 있어 원동력은 일 그 자체였다. “아직 일보다 더 좋아할 수 있는 걸 찾지 못했다”는 그는 남은 6개월 동안 올 한 해를 꽉 채울 또 다른 작품과 앨범 활동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일이 원동력이 되는 이유는 제가 너무 좋아서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연기하는 것도, 무대에 서는 것도 너무너무 좋아하거든요. 사실 제가 20~30대 땐 결혼한 뒤에 무대에 올라가는 건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었어요. 심지어 서른이 넘은 여자가수들에겐 (댄스가 아닌) 발라드를 부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정말 운이 좋았던 건, 서른일고여덟 살까지 계속 (댄스 가수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물론 그 기간 동안 슬럼프도 당연히 있었지만 제가 일을 너무 사랑하다 보니 지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 여성 커뮤니티에서 엄정화는 ‘비혼의 롤 모델’로도 각광받고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결혼을 안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냐’는 질문에 “없어, 절대로”라는 확신에 찬 답변을 한 것이 화제가 됐던 것이다. 나이에 쫓겨 허겁지겁 결혼해야 했던 옛날의 여성들을 넘어서, 결혼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된 지금의 여성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로 엄정화는 “절대 조바심을 가지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제가 비혼을 꼭 추천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제가 생각했을 때 결혼은 정말 선택이고,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결혼이라는 거죠. 꼭 해야 하는 필수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 옆에서 ‘언제 결혼할 거야, 빨리 남자 만나!’ 하는 말에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젊을 때는 ‘이 나이엔 꼭 결혼해야 해’ 하는 게 있어서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하지만 나이 때문에 너무 조바심을 가지지 말고, 자기가 원해서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결혼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정해 놓은 결혼 타이밍이 아니고 자기가 원하는 인생의 타이밍에,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결혼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직 일보다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 (결혼을) 안 하고 있지만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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