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발목 잡혀 아무 일도 못하는 지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김반장’이 돼 해결사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많다. 일각에선 김 대표가 나서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말리고 있다. 대표가 된 지 두 달도 안 됐으니 좀 더 신중한 행보를 보이라는 주문이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에선 위기가 곧 기회라며 등 떠미는 분위기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탄탄한 고정지지율을 가지려면 짧지만 굵직한 한마디로 여론을 휘어잡아야 한다는 논리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세월호 정국 해결사로 나설까. 아직까지는 관망 중이다. 김 대표가 7월 15일 국회 본관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는 세월호 유족대표들과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현재로선 세월호 정국에서만큼은 김 대표가 커튼 뒤에 숨어 분위기만 엿볼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더 실린다. 새누리당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인사의 말을 들어보자.
“세월호 참사는 정무적 판단이 조금만 잘못돼도 여당에 대형 악재로 돌변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사안이다. 김 대표는 참사 발생 당시 당 대표도 아니었고 참사 수습 과정에서도 진도에 한 번 가보지 않았다. 뒤늦게 발을 담가서는 뜨거운 맛을 볼 수 있다는 소리다. 해결 당사자가 아니다. 그러니 주변에선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린다. 청와대 분위기도 엿봐야 하고 아직은 정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여러모로 김 대표에게 유리하다고들 말한다.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상처가 크게 난다는 것이다.”
여의도 정가에서 “김 대표는 빠지세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다. 일단 현 상황이 새누리당에 불리하지 않다. 야당이 유족과 하나의 안으로 새누리당과 협상한 것이 아니라 야당 안만 가지고 협상하다 유족이 ‘노(No)’를 한, 뒤죽박죽의 연속이다. 협상 과정에서 야당 잘못이 크다고 보도되는 이유다. 뺨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맞고 있고, 애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쓰고 있다. 김 대표가 뒷짐 져도 왈가왈부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는 침묵하는 보수 성향의 다수를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권 한 관계자의 분석은 이렇다.
“큰소리치는 진보 성향의 강경파 소수 때문에 세월호 특별법은 유족 뜻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지만 반대로 과거 여러 사고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이번 특별법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보수 세력도 분명히 있다. 만약 김 대표가 나서서 야당 손을 조금이라도 들어주기라도 하면 집토끼가 뛰쳐나갈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지금 김 대표는 물밑에서 당내 세력화에 힘쓰면서 산토끼보다는 집토끼 관리에 공을 들여야 할 때다. 감 놔라 배 놔라 할 때가 아니다.”
세 번째가 청와대와의 관계다. 세월호 청문회장에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호성 제1부속실 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서야 하느냐는 문제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와 ‘세트’도 움직이고 있다. 청와대로선 두 증인의 출석은 자존심과 관계돼 있다. 이럴 때 김 대표가 나서 야당과 딜을 해서는 여권 분열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아직은 김 대표가 (청와대와 각을 질) 군번이 아니다. 청와대를 분노케 해서 김 대표에게 득이 무엇이냐”라고 반문하는 중진 의원도 있었다.
무엇보다 원내지도부에 일임한 덕에 김 대표 이미지가 지금까지 나쁘지 않다는 말도 있다. 원내지도부 쪽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이완구 원내대표, 주호영 정책위의장에게 골치 아픈 일을 던져주고 김 대표 본인은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원내지도부 일이니까 간섭할 일이 아니다라는 것은 좋은 명분이다. 권한을 위임하고 본인은 개입하지 않으면서 원내지도부의 역할을 인정해주는 모양새다. 만기친람하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을 부각하는 듯하다. 각종 회의 때에도 ‘이완구 원내대표가 애쓰고 있으니 우리는 따라가자’고만 한다. 정기국회까지 파행되면 이 원내대표 물러가라는 소리가 나오지, 김 대표 물러나란 소린 안 나올 것이다. 당내 정치를 아주 잘하고 있다.”
정치권 사정을 수집하는 한 기관 인사는 또 이런 말을 했다.
“김 대표가 이 원내대표와 자주 만나 세월호 해법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전혀 바깥으로 말이 새지는 않는다. 김 대표 주변부에선 정기국회 때 김영란법이나 유병언법 등 특권 내려놓기 이슈가 나타날 때 김 대표가 나서 여론에 눈높이를 맞추면 인기가 올라갈 것이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이슈가 너무 크기에 작은 이슈, 뭔가 희생하는 듯한 이슈를 선점할 것이란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은 원론적으로만 대응하라 간언하는데 김 대표가 이를 잘 지키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김 대표가 정치력을 발휘하라’고 공사석에서 이야기하는 여권 인사들이 나타났다. 김용태 의원이 8월 22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무성 대표를 포함해 나아가 청와대까지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것을 강력하게 당부한다”고 밝혔다. 당내 인사가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김 대표를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김 대표를 위시한 지도부가 야당의 자중지란만 바라보며 즐기다가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특히 단식 중인 김영오 씨의 건강이 혹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정치권 전체가 국민으로부터 지탄받게 된다”면서 “결국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집권여당이 된다.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세월호 특별법의 처리를 촉구하면서 40여 일째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김 씨가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자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며 거절했다. 한나라당 공채 1기 보좌진은 이렇게 진단했다. 지금이 김 대표가 ‘잠룡’인지 ‘잡룡’인지 판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보통 이럴 때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정치인이 있었다. 김 대표가 스탠스를 잘 잡고 정무적 판단을 제대로 하면 단번에 대권 후보로 갈 수도 있는 사안이 바로 세월호 정국이다. 미적미적하다간 김 대표의 능력이나 실체가 드러났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세력이 나올 수도 있고, 청와대 눈치만 보다간 황우려(황우여 전 대표를 비아냥대며 부르는 말)와 다를 바 없다며 손가락질하는 의원들이 다른 대권 주자를 조기에 불러들일 가능성도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