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미국대선은 2012 한국 대선의 재현 상기현장
노무현 위폐와 박정희 영정의 대결, 과거회귀형 대선
트럼프, 노무현 저돌적 언행과 이명박 성공신화 복사판
힐러리, 신선도 전혀 없는 금수저, 박근혜 대통령 유사
2001 9-11테러, 2008 리먼사태 세계시민 자존감 붕괴
[일요신문] 요한기자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는가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민주당 힐러리와 공화당 트럼프 후보 중 누가 승리하건 간에, 대 한반도 전략과 정책기조에는 큰 틀에서 변동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대선 과정, 특히 트럼프의 약진이 한국의 2017 대선에 어떤 숨은 메시지를 주는가에 초미의 관심을 갖고 있다. 하여, 요한기자는 레이스가 본격화된 5월, 미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7월 초부터 8월 초 한달 여, 나아가 박빙의 분수령을 이룬 9월 중순 세 차례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 대선 현장 속에서 다양한 견해를 청취, 체감하면서 2017 한국대선의 향방에 대한 연관성과 시사점을 찾아 고뇌했다. 그 결과 2016년 미국 대선은 2012년 한국 대선의 복사판임을 확인했다. 나아가 미국대선은 2017 한국대선의 예고판이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사진) 등 두 후보는 뉴욕 주 헴스테드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동부시간 오후 9시부터 1시간 30분간 열리는 첫 TV토론에서 대통령 자격을 놓고 혈투를 벌인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이 지난 19∼22일 성인 1천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5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투표 의향이 있는 유권자 사이에서 클린턴은 46%, 트럼프는 44%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오차범위(±4.5%포인트)고 이달초보다 격차도 줄었다. 사진=연합뉴스
1. 트럼프 같은 사람이 어떻게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는가?
트럼프는 외모부터, 말과 행동이 모두 독특한 정치인이다. 특히 동양적 시각에서 볼 때 거친 얼굴과 표정, 거침없는 주관적 언행은 도저히 정치 지도자로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어떻게 기업인 출신 트럼프가 유수한 정치인 출신 공화당 후보들을 압도하여 한숨에 ‘훅’ 날려버리고 승리했는가. 영부인, 국무장관직에 빛나는 힐러리 클린턴과 맞붙어 박빙 그 이상의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가. 이 과정이 한국의 2017 대선에 주는 숨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트럼프의 공화당 후보 선출과정 자체가 공화당의 쇄신과정에 해당한다. 이런 견해는 미 공화당의 미래로 평가받는 폴 라이언 상원의장의 입장이기도 하다.
미 공화당은 ‘돌출한 괴물’ 트럼프 후보 선출을 거치는 과정 자체로 의문과 충격, 혼란과 반성 등 겹겹이 쌓인 모순덩이들을 걷어내는 수술대 위에 있다. 자의든 타의든 보수적 전통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또 트럼프가 힐러리와 박빙의 시소게임을 유지할 수 있는 그 역량(VIRTU)의 발원지를 찾아내야 한다. 사실 오바마와 미셀부처의 막강한 지지가 아니었다면, 힐러리는 이 메일 스켄들, 건강이상설 등으로 벌써 무너지고도 남았을 법하다. 요한기자가 취합한 미국대선의 전개과정, 특히 트럼프약진의 배경에는 네 가지 정도의 환경과 그 개인의 역량이 집결되어 있었다.
2. 미 국민, 2013 9-11테러와 2008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충격
첫째, 일단 미 국민들은 공화당과 민주당을 가릴 것 없이 미 행정부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9-11테러는 세계 중심국가 시민의 가슴에 공포심을 가득 안겼고,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는 극도의 경제적 불안과 불만을 야기시켰다.
오바마 행정부 8년간 최선을 다해 극복했으나, 미국인들 가슴은 만족하지 못한다. 세계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의 와해, 경제난이 초래한 상실감과 불만이 부시에서 시작되어 오바마에 이르기 까지 미 연방정부와 대통령 리더십과 국민 간에 근본적인 불신감이 생겼다. 오바마의 집권후반기 지지도가 50%이상으로 역대 대통령가운데 최고를 구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슴속에 도사린 불만감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둘째, 힐러리와 지나간 권력에 대한 식상함과 반감이다. 대선후보로서 힐러리의 권력욕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하다. 이 메일 스캔들, 건강이상설까지 겹치면서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힐러리는 빌 클린턴대통령의 영부인, 뉴욕주 지사,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간을 지낸, 세계적 지도자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관록이 미국민들에게는 오히려‘반감’(antipathy)을 불러 일으킨다.
“힐러리는 대통령만 빼놓고 다 누려 본 여자다. 안 해 본 것이라곤 오로지 대통령이다. 그녀에게는 대통령 배지라는 훈장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을 뿐”이라는 것. 우리식대로 하면 ‘개인의 영예를 위해 대통령 당선이 중요한 금수저’라는 얘기다.
셋째, 성공한 기업인을 존경(respect)하는 미국적인 전통이다. 트럼프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기업을 더욱 성공시킨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다인종 이민자 연합국가인 미국적 전통 속에서 성공한 기업인은 일단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존경받고, 그의 주장에도 무게가 실린다. 따라서 미국 시민들은 성공한 백만장자 트럼프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다.
넷째, 트럼프 본인의 결정적인 ‘소통의 숨은 강점’이 있다. 트럼프는 출마직전까지 6년간 한 방송국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따라서 방송 현장에서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story)와 해답(solution)이 무엇인지를 거의 직관적으로 포착하여 화답한다는 점이다.
즉, 백인사회에서는 오바마의 출생에 의문을 가하고, 멕시코 접경인 애리조나주에서는 국경선의 장벽을 주장하기도 한다. 지역별, 세대별, 인종별, 계층별, 성별 등 불만과 욕구를 헤아려 그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주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는 것.
결정적으로 트럼프는 정치인이 자신의 주장을 국민들을 계몽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욕구에 자신을 내 던져 소통한다는 것. 물론, 공약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거나 없거나, 내용의 진실여부와 공화당 정책과 공약과 간극(gap)이 있고 없고는 차후문제로써, 그 때가서 닥치면 해결할 일이라는 식이다. 이 트럼프식 소통방식이 기라성 같은 공화당 후보군을 ‘훅하는 순간’에 날려버린 힘이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사진),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등 두 후보는 뉴욕 주 헴스테드 호프스트라 대학에서 동부시간 오후 9시부터 1시간 30분간 열리는 첫 TV토론에서 대통령 자격을 놓고 혈투를 벌인다. 워싱턴포스트(WP)와 ABC방송이 지난 19∼22일 성인 1천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25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투표 의향이 있는 유권자 사이에서 클린턴은 46%, 트럼프는 44%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오차범위(±4.5%포인트)고 이달초보다 격차도 줄었다. 사진=연합뉴스
3. 트럼프의 약진은 변화를 갈망하는 미국의 시대정신
정리하자면, 미국 대선의 저변, 특히 트럼프의 약진과정에는 2001년 9-11 사태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라는 비극이 깔려 있다. 세계시민으로서 미국민들 가슴의 밑바닥에는 자부심과 긍지는 간데없고, 위기감과 불만이 가득하다. 그 물결은 기득권 층 공화당 후보들은 물론이요, 금수저 힐러리에 대한 반감으로 끓어 올랐다.
트럼프는 민중의 가슴속에 있는 불안과 불만의 저변에 불을 지르는 데 성공했다. 성공한 백만장자를 인정하는 미국적 전통 속에서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서 현장경험 등이 융합되어 ‘막말의’ 트럼프는 약진에 약진을 거듭했다.
멕시코와 아리조나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둥, 오바마의 출생지는 미국이 아니라는 둥의 해괴한 막말에도 트럼프가 무너지지 않는 본질적 이유이다.
두달 간 세 차례, 미국대선을 현장 취재하면서 요한기자는 지난 2002년 한국대선의 복사판을 보는 듯 한 충격을 받았다. 트럼프는 말과 행동이 거침없는 성공한 기업가이자 방송인 출신이다. 우리나라 지도자와 비교하면 변호사 노무현과 성공신화에 빛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 두 사람을 융합한 듯, 외모부터 걸어온 길 까지 흡사하게 닮았다.
힐러리 클린턴에게서는 박근혜 현 대통령과 비유될 만하다. 힐러리는 닮고 닮아,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후보로 여겨진다. 힐러리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역량은 오바마와 미셀 대통령 부처의 국민적 지지도에 힘입고, 관록의 국정경륜이 그나마 트럼프와 비교할 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힐러리 클린턴과 2012년 박근혜 대통령후보는 평면적으로 볼 때 출신배경에서 영부인과 공주, 금수저 출신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심층적으로는 본다면 힐러리는 국정경험을 두루 거친 백전노장이라는 점, 죽을 고비를 넘긴 박근혜대통령이라는 점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난다.
4. 2012 한국형 대선의 복사판, 미국 2017 미래는 밝지 않다.
요한기자가 두 달간, 세 번씩이나 미국을 방문하여 현장을 취재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분명한 사실은, 미국 2016 대선 양상과 후보들이 2012년 한국 대선의 양상과 후보와 유사하다면, 미국은 현재 과거 지향적인 선거를 치루고 있다.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의 게임은 과거지향적 선거였다. ‘노무현의 위폐를 든 문재인’, ‘박정희의 영정을 껴안은 박근혜’, 2012 한국 대선은 후보들과 오래된 미래를 선택하는 국민들의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의 집결 과정이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는 ‘추억과 회상’의 선거였다.
국민들로서는 미래를 위한 최선이나 차선이 아니라, 과거의 ‘차악의 선택’을 강요받은 선거국면에 다름 아니다. 국민들은 박정희의 깃발이라는 ‘비교 차악’을 선택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은 2013년 이후 역사철학에 기반한 미래비전을 실천하거나 구현하지 못했다. 국민들의 판결, 즉 2016년 4-13 총선의 완패가 그 증좌이다.
9월말 현재 미국 대선은 박빙의 국면이다. 국민적 지지도에서는 트럼프가 박빙 이상,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힐러리가 박빙우세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마디로, 누가 당선되는지는 신만이 알 수 있을 지경이다.
우리 국민들 다수는 힐러리 클린턴이 낮 익은 얼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힐러리가 당선될 경우라도 오바마와 미셀 덕이라는 점에서 볼 때 대통령으로서 힐러리의 미래에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 한국의 박근혜정권이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도 매 한가지다. 과거지향적 선거 속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할지라도, 미국은 크나큰 혼란과 자기충돌 속으로 급속히 빨려 들어간다. 우리나라 노무현이나 이명박 정권이 보인 ‘혼란스럽고 허무한 10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선은 미래시간을 선택하는 것. 과거회귀적 선거를 치루면, 지도자도 국민도 망한다. 다수의 폭력, 세계 권력에 도취하여 정권은 노선의 방향성(vector)를 잃고, 대중이라는 다수의 폭력으로 자행되는 충동적이고 포퓰리즘적 개혁들은 결국 야만으로 귀결된다.
미국 역사 특유의 경건함과 경쾌함, 즉 몸과 정신과 혼을 시대정신에 헌신하여 구축한 청교도와 지도자들의 긍정적인 기반들이 파괴될 게 불 보듯 훤하다. 2012 한국의 대선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2017년 이후 세계최강국 미국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아니 암울하다.
박요한 선임기자 yohanletter@ilyo.co.kr
정치학박사 / 숭실대 초빙교수 / 한국정치학회·북한연구학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