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책을 좋아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책을 끼고 살았다. 영주인 아버지는 책만 보는 그를 두고 보지 못했다. 약해빠졌다고, 자기 칼을 휘두르지 못하고 남의 생각만 읽는다고. 약해빠진 아들에 무조건 분노한 아버지는 그 아들의 진지한 호기심과 진중한 판단력을 보지 못하고 그를 죽음의 야경대로 쫓아낸 것이다. 그는 거기에서 약함 속의 따뜻한 인간미를, 사태 속에서 본질을 놓치지 않는 판단력을 알아본 주인공을 만나 그의 좋은 친구 혹은 조언자가 된다.
<왕좌의 게임>엔 책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 나온다. 바로 난장이 티리온이다. 명가에 영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난장이라는 이유로 티리온은 권력을 사랑하는 힘센 아버지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왕비가 된 누이에게까지 괜한 미움을 받는 인물이다. 남들만큼 자라지 못하고 남들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가까운 이들에게 모멸을 당하면서 그를 키운 것은 책이고, 호기심이었다. 그는 책을 읽으며 사람을 읽는 법을 배우고 판단력을 키워나간다. 마침내 그는 그를 그토록 혐오하는 아버지와 누이를 떠난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자기가 가진 지혜가 힘이 되는 보다 넓은 세상으로.
티리온은 정신이 강하기 때문에 스스로 헤쳐 나갔으나 누군가의 보살핌이 꼭 필요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선 10년 동안 특수학교를 다녀야 하는 학생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특수학교는 그에 맞게 늘지 못해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등교를 위해 1시간 이상을 쓰는 학생도 많단다.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특수학교를 늘리고, 일반학교 특수학급을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잘한 일이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차별하는 사람의 편견이다. 바꿀 수 없는 ‘나’의 모습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들어 그를 혐오하고 경멸하고 무시하는 공동체는 좋은 공동체가 아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잘났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잘난 것 아닌가. 넘치는 사람은 넘치는 대로, 모자란 사람은 모자란 대로 함께 사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좋은 공동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