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선수단과 응원단 외에 고위급 대표단, 민족올림픽위 대표단, 예술단, 참관단(일반관람객),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 전례 없이 다양한 명칭의 대표단을 대거 보내기로 한 것도 특이하다. 북측은 2002년 아시안게임 때 선수단 응원단 650명을,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때도 527명을 보냈었다.
동계올림픽에선 출전자격 선수가 적은 북한이지만 여타 인원을 포함하면 과거 수준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이처럼 다양한 대표단을 보내는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의 이미지를 문화예술과 평화의 이미지로 포장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문제는 올림픽 이후다. 북한의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 어느 것이 먼저냐에 관계없이 일단 재개되면 남북, 북미 관계는 올림픽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점에서 이번 회담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올림픽 이후 남북군사당국회담의 향배이다. 군사당국회담이 휴전선을 통과하게 될 북한 대표단의 통행안전에 관한 군사적 협의에서 그치고 말 것인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을 가져올 계기가 될 것인지 주목되는 이유이다.
리선권 북측대표의 회담장 발언에 비출 때 전망은 비관적이다. 우리 측이 비핵화를 거론하자 그는 “남측 언론에서 비핵화문제로 회담이 진행된다는 얼토당토않은 여론이 확산됐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그것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고도 했다. 그들이 늘 하는 ‘서울불바다’ 협박도 주한미군에 대한 공격일 뿐 동족을 겨냥한 것은 아닌 셈이다.
그는 이어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협상탁(테이블)에 올리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는 핵포기를 전제로 한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며 하더라도 미국하고만 하겠다는 얘기다. 한국을 통해서 미국으로 가는 게 첩경임을 모르는 소치이다.
군사당국회담이 열린다 해도 북측은 중국과 러시아가 지지하는 ‘쌍중단(雙中斷)’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핵무기의 추가 제조나 추가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도 중단한다는 쌍중단 또한 북한의 핵보유 인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북측의 이런 입장은 핵포기 때까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는 국제여론에 반하는 것이다. 기존 핵보유국들에도 가상적국은 있지만 나라를 특정해서 핵무기를 쓰겠다고 협박하진 않는다. 외부에 적을 둬야 유지되는 체제의 특성 때문이긴 하지만 유독 북한만 그렇다.
이 같은 핵문제에 관한 북한의 착각과 무지는 쉽사리 바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북한이 평창에 사람들을 보내면서 한 가지는 명심해야 한다.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남한에 온 북한응원단원이 비에 젖어 가로수에 걸려 있는 김정일 플래카드를 떼어내 끌어안고 대성통곡하던 장면을 우리는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임종건 언론인 전 서울경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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