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경우가 있었다. 공천을 받기 위해 연줄을 대서 권력자의 시간을 요정에서나마 잠시 얻어낸 사람이 있었다. 그가 높은 분 앞에서 자기의 신상자료를 앞에 놓고 무릎을 꿇은 채 설명하던 순간이었다. 팔베개를 하고 옆으로 길게 누워있던 높은 분의 손이 뒤에 있던 여인의 치마 속으로 들어가 있는 걸 봤다는 것이다. 모멸감으로 그는 정치인의 꿈을 접었다. 배꼽아래의 얘기는 하지 않는 법이라는 말을 뚜껑삼아 시궁창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덮던 시절이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스타에게 성추행을 당한 한 여성의 호소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여성은 내게 차 안에서 스타에게 따귀를 맞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다. 당시 그 스타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를 광신도같이 따르는 일부 팬들과 그에게 거액을 받은 변호사들에 의해 피해여성이 꽃뱀으로 바뀌었다. 돈 앞에 피해자도 영혼을 팔았다. 스타는 피해여성을 해외로 보내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허위가 진실이 되고 진실이 허위가 됐다. 훗날 그 스타의 비웃는 말이 전해져 왔다. 몇 십억이면 대법원판례도 바꿀 수 있다고.
죄의식이 없기는 정치권력이던 문화 권력이던 성직자건 파렴치범이건 같은 수준이다. 밤마다 돌아다니며 여러 명을 강간한 흉악범을 구치소에서 만난 적이 있다. 도대체 잘못했다는 인식이 없어 물었다.
“당한 여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 생각이 없는데요.”
피해자의 입장을 한번쯤이라도 생각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님에 틀림없었다. 내가 말을 바꾸어 다시 물었다.
“딸이나 부인이 당신이 한 짓같이 똑같이 당했다면 그 범인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야 당장 죽여 버리죠.”
그가 눈을 치켜뜨면서 말했다. 그는 진짜 살인의 전과도 있었다.
“그게 바로 당신이 받아야 할 형량이 아닐까요?”
“어?”
그가 순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나의 쾌락만 알고 남의 상처는 개의치 않았던 세상이다. 그래서 성경은 주위의 여인을 가족같이 보라고 주의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자의 저항인 미투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일부 부작용도 있겠지만 오염된 세상을 씻어내는 새 물결이었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