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 여기고 바람에 날려버린 이야기들이 어느 날 바람을 타고 내게로 와 내 스승이 되었다. 내 안에, 우리 안에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소크라테스의 등에(쇠파리) 같은 스승!
말년에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군위의 인각사는 상상했던 것보다도 작았다. 그 때 그 시절에도 작은 절이었다고 한다. 하긴 사람이 커야지 절만 커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이 사람을 크게 보이게 만드는 것일까? 지위가 높아서일 수도 있고, 일가를 이룬 업적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끝까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사람됨, 그러니까 작아질 수 있어야 큰 사람이다.
일연이 전하는 그 이야기들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으면 운명이 어떻게 ‘나’를 찾아오는지, 운명의 바람을 맞으며 ‘나’는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더듬게 된다. 그 시절에서 국사까지 했으니 일연은 분명 법 높으신 스님이었을 텐데 그는 어디서나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흘렀던 것 같다. 문수오자주로 수행을 했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길도 없다. 그러나 그 수행으로 그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스스로를 풀어주지 못한 이는 결코 타인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그는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그 힘으로 편견 없이 조작 없이 이 땅이 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사로 임명한 왕명을 뿌리치고 작디작은 군위의 기린사로 내려간 이유도 9살 때 자신을 출가시킨 후 평생 과부로 지낸, 늙으신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였다. 기린사만큼이나 초라한 어머니를 모시는 일이 화려한 왕을 돕는 국존의 일보다 중요했던 스님이 큰스님이 아니면 누가 큰 스님이겠는가. 그리고 거기서 그는 몽고의 침입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산야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민심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노래들, 이야기들을 꼼꼼히 적어나간 것이다.
단군의 자손으로서 우리는 안다. 동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쑥과 마늘로 견뎌야 하는 인고의 세월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한반도의 평화 만들기는 겨우 ‘시작’이다. 호랑이처럼 그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 회복을 위해서는 곰처럼 견뎌야 하는 날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식해야 할 것 같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