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관은 탈세를 위해 그 돈을 인출한 것으로 인식했다.
“어머니에게 드린 돈이니까 어머니 마음이죠. 내가 상속세를 줄이려고 막았어야 했나요?”
“수표를 현찰로 바꾸지 않고 왜 자기 통장에 그대로 넣었어요?”
조사관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뇌리에 모든 국민은 탈세범이었다.
“내가 땀 흘려 번 돈을 돌려받은 건데 왜 죄인같이 그런 비굴한 행동을 해야 하는 거죠? 어머니는 평생 소득이 없던 분이고 집안에서 돈을 버는 건 나뿐이었어요. 국가가 껍데기만 보지 말고 진실을 확인해서 세금을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정직하신 마음이 저도 조금 보이기는 하는데 세금을 내지 않으시려면 그게 자기 돈이라는 직접증거가 있어야 해요. 도대체 왜 그 수표를 현찰로 바꿔서 추적을 면하지 않고 자기 통장에 입금시키신 거예요? 도대체 법을 아는 변호사 맞아요?”
평생을 해온 변호사라는 직업이 모두에게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다. 법을 배울 때는 모두 정의를 위한다고 했다. 세월이 가면서 정의가 돈으로 바뀌는 걸 봤다. 대법관도 법원장도 장관도 변호사 되면 고용된 양심으로 자본주의 첨병으로 바뀌었다.
“그 돈이 실제로는 변호사님 돈이라고 해도 법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국민이 증거를 대지 못하면 과세처분을 합니다.”
“법정에서는 검찰이 증거를 못 대면 무죄예요. 국민 편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는 거죠. 그런데 세무당국은 모든 국민을 탈세범으로 간주하고 증거를 못 대면 그냥 돈을 뺏어 국민의 눈물을 뽑는다는 겁니까? 왜 그렇게 법이 다르죠?”
“저희 말단공무원은 국민들 사정을 알아도 나중에 감사가 나왔을 때 ‘너 왜 봐줬어? 돈 먹었지?’라고 할까봐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어요.”
“그건 국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고 몸보신 행정이죠. 그렇게 메마르게 할 거면 인공지능한테 맡기면 되겠네?”
세무조사관 앞에서 할 말을 다하고 세금 부과서에 사인을 하고 나왔다. 어차피 세금을 낼 각오를 하고 있었다. 거리의 변호사로 나가 탑골공원의 궁색한 노인들을 만나 보았다. 생각보다 사회의 안전망이 정교하게 잘 짜인 걸 발견했다. 기부 대신 세금을 내도 그 돈이 밑바닥까지 흘러가서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었다. 당당하게 세금 앞에서 떳떳하고 싶은데 법에 영혼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