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공명심과 승부욕이 허위를 만들고 과녁이 되어버린 그는 늙은 고목같이 쓰러졌다. 그는 민주화 투사였다. 5·16혁명 후 당국의 강제노동을 고발했다가 간첩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나이 칠십에 그가 처음으로 한 단체의 회장을 맡은 것이 화근이었다.
잘못이 없는 그는 판사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지 않았다. 그 태도가 판사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는 괘씸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판검사가 법을 왜곡해 다른 법률을 적용해 버린 것이다. 그에게 불행은 세 박자로 왔다. 구속될 무렵 아들이 죽었다. 재판 뒷바라지를 하던 아내가 죽었다.
혐의가 풀려 석방된 그는 빈집에서 혼자 지내다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작가였던 그는 빈집에서 판검사의 법왜곡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려고 했었다.
정권이 바뀌면 법의 해석이 극에서 극으로 가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법원은 광주에서 시위하던 시민들을 폭도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자 사법부는 그 시민들이 민주화운동을 한 거라고 했다. 다시 시대가 변해 전두환이 군사반란으로 재판을 받게 되자 판사는 광주에 모였던 분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헌법기관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면 그 도구가 된 정치판검사에 의해 지난 정권의 사람들이 악의 화신이 되기도 한다. 현재진행형인 사례도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금으로 걷은 특활비를 대통령, 국정원장, 국회의원, 대법관들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나누어 가지기도 했다. 적폐였다.
바뀐 이번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도덕성이다.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정권의 비서실장과 국정원장들만 죄인으로 찍었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적용할 현실의 법이 마땅치 않았던 것 같다.
때마침 회계실무자의 횡령을 중하게 처벌하는 규정이 있었다. 검찰은 전직 국정원장들을 모두 회계실무자로 간주해 그들을 국고손실죄로 기소했다. 법원 역시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장들을 회계직원으로 보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국정원장을 유가증권을 취급하는 회계직원으로 거는 것은 법의 왜곡 같다. 법해석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판사나 검사가 그렇다면 그런 걸로 살아왔지만 이상하다. 검사와 판사가 찍는 사람만 죄인인 현실도 공평하지 않다.
결정적인 증거를 외면하면서 마음대로 한쪽에 유리하게 재판을 하는 판사도 봤다. 법의 여신이 든 칼이 녹슬고 저울이 기울면 사법정의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법원과 검찰이 과거 수많은 사건에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냈는데도 정작 판검사들이 책임을 지지 않았다. 독일은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이나 수사 중인 사건을 처리하면서 법을 왜곡해 당사자 일방을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만든 경우 징역형에 처하도록 형법에 규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사법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판검사가 잘못하면 형사책임도 지고 손해도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억울한 눈물을 뽑은 판검사는 공소시효 없이 나중이라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