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콘셉트 유사성 비판 넘어서 눈여겨 볼 수밖에 없는 성과…열연 배우들의 해외 인기도 주목
# 철 지난 설정, 게으른 구상은 '마이너스'
‘오징어 게임’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은 무엇보다 2021년의 감성과 이 작품이 맞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스토리 라인과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밋밋한 캐릭터 및 그들의 최후, 비슷한 콘셉트를 떠올려 보라면 몇 개의 작품을 꼽아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각종 설정 등이 가장 큰 지적거리였다.
먼저 서바이벌 데스매치 장르의 효시처럼 여겨지던 ‘배틀로얄’(2000) 이후로 쏟아져 나왔던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해당 장르물 ‘덕후’들의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이는 ‘오징어 게임’의 첫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2014) 속 ‘다루마상가 코론다’(달마님이 넘어졌다)의 게임 소재, 운영 방식, 자잘한 연출 부분에서 제기된 유사성과 맞물려 더 큰 논란을 낳기도 했다. 황동혁 감독이 직접 “‘오징어 게임’은 2008년 구상해 2009년 완성한 작품”이라며 유사성은 우연에 의한 것임을 해명했지만 연출의 유사점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했다는 것이 비판의 주를 이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소재의 활용은 나태한 캐릭터 운용으로 이어졌다. ‘오징어 게임’ 속 배우들의 열연과는 별개로 각 캐릭터들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아주 모범적인 길을 걷는다. 특히 여성 캐릭터들의 설정과 결말은 감독이 2008년 첫 구상을 했을 당시에나 먹혔을 법한 평면적인 모습으로 국내 일부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여성 캐릭터는 △성을 활용해 이득을 취하거나 △성적인 사건으로 인한 어두운 과거를 지녔거나 △남성 캐릭터의 각성을 위한 도구로만 철저히 활용되는 등 기존에 비슷한 장르에서 지적됐던 단점들을 그대로 흡수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해당 장르물 특성상 노인, 어린 아이, 부상자와 마찬가지로 방해물이거나 주인공의 ‘인간찬가’의 소재로만 활용될 뿐인 구시대적 여성 캐릭터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란 지적이 이어진 이유다. 가장 비중이 높은 캐릭터인 새벽(정호연 분)부터 시작해 주인공 기훈(이정재 분)의 어머니, 딸 등 조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명도 교과서적인 여성 캐릭터 활용법과 그 결말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작품의 스케일에 비해 그 구상과 설정에 게으르게 접근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 해외의 시선은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오징어 게임’의 흥행은 현재 진행형이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TV 쇼 전 세계 순위 4위를 기록한 뒤, 9월 22일 기준으로 한국, 일본, 미국, 멕시코 등을 포함해 총 23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를 포함한 총 39개 국가에서도 상위권에 올라 화제성을 입증했다. 또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 IMDb(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 지수도 10점 만점에 8.3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 1위를 차지한 것은 ‘오징어 게임’이 갱신한 최초의 기록이다. 직전 최고 기록은 ‘스위트홈’으로 3위에 올랐었다. 해외 매체들은 “가장 기이하고 매혹적인 넷플릭스 작품 중 하나”(포브스) “K드라마의 고전적인 표현에서 벗어난 서스펜스”(RTL 프랑스), “천재적인 황동혁 감독의 알레고리. 자본주의 사회의 강력한 축소판을 제시한다”(NME) 등 극찬을 이어가기도 했다. 해외 매체나 시청자들이 지적한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게임을 즐기는 VIP로 묘사된 외국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뿐이었다.
국내 비판과는 별개로 ‘오징어 게임’의 이 같은 성적은 눈여겨 볼 만 하다. 앞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국내 오리지널 시리즈 가운데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킹덤’ ‘인간수업’ ‘스위트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D.P.’에 이어 해외에 K-드라마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킬 수 있는 ‘새로운 괴물 콘텐츠’가 자리 잡았다는 데서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총괄 VP는 “전 세계 시청자가 한국 콘텐츠를 사랑해주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국의 훌륭한 이야기를 국가, 언어 및 문화를 초월한 엔터테인먼트 팬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며, 앞으로도 국내 창작자들과 함께 협업해 높은 수준의 스토리텔링으로 전 세계 팬들을 즐겁게 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오징어 게임’의 성공을 바탕으로 한국 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의 추가적인 투자도 기대된다.
# 정호연·이유미·김주령·허성태의 재발견
배우들의 열연도 ‘오징어 게임’의 흥행 순항에 돛 역할을 했다. 주인공 성기훈 역의 이정재, 그와 대립하는 ‘정신적 이란성 쌍둥이’ 조상우 역의 박해수의 새로운 모습도 호평을 받았지만 인상적인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각인된 조연들 역시 주목의 대상이 됐다.
탈북민 강새벽 역의 정호연에게 있어 ‘오징어 게임’은 연기자로서의 첫 데뷔작이면서 그의 앞으로의 삶을 뒤바꿀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소 어색했던 북한 사투리 연기 탓에 국내 시청자들에겐 호불호가 갈렸지만 해외에서 정호연을 향한 열기는 공개 직후부터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40만 명 상당이었던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오징어 게임’ 공개 후 188만 명으로 4배 이상 뛰었다는 것만으로 해외 팬들의 열정적인 호응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어 보인다.
강새벽과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우정을 보여줬던 지영 역의 이유미 역시 상당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문제 아닌 문제작으로 꼽히는 영화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에 이어 최근에는 ‘인질’에 이르기까지. 유독 박복한 캐릭터로 국내 대중들의 애정과 동정을 한 몸에 받아왔던 이유미도 4만 명 대였던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51만 명으로 급증하는 등 ‘오징어 게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내년 공개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출연이 예정돼 있는 만큼 앞으로의 성장세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미칠 듯한 연기력’으로 후반부 ‘오징어 게임’의 몰입도를 책임진 한미녀 역의 김주령과 장덕수 역의 허성태도 국내외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000년 영화 ‘청춘’으로 데뷔한 김주령은 2018년 ‘스카이캐슬’에서 노승혜(윤세아 분)의 언니 노선혜 역을 맡아 영어와 한국어가 섞인 독특한 대사로 한때 ‘스카이캐슬’ 유행어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번 ‘오징어 게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는 철저히 이기적인 인간이면서 동시에 예상하지 못했던 강렬한 최후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비록 구시대적인 여성 캐릭터의 모양새는 버리지 못했으나 배우의 열연이 이를 어느 정도 희석해 준 셈이다.
그런 그와 함께 한 장덕수 역의 허성태는 결말이 예상 되는 평면적인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그를 향한 시선을 놓칠 수 없게 만들었다. ‘빌런’ 캐릭터를 좋아하는 해외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 성을 그대로 지켜간 장덕수에 대한 호응의 목소리가 높았다. 배우 역시 이 같은 사랑에 보답하듯 ‘오징어 게임’과 관련한 해외 팬들의 콘텐츠를 SNS로 공유하면서 화제몰이를 하기도 했다. 허성태는 ‘오징어 게임’에 이어 올 하반기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로 다시 해외 팬들을 찾을 계획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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