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증세까지? 여론 부글부글
일본은 10월부터 소비세에 ‘인보이스(청구서) 제도’를 시행한다. 요약하면, 그동안 연 매출액 1000만 엔(약 9030만 원) 이하의 소상공인에게는 소비세 납세의무를 면제해왔으나 새롭게 징수 대상이 된다. 재무성은 “인보이스 제도로 연간 총 2480억 엔(약 2조 2000억 원)의 세금이 추가로 걷힐 것”으로 내다봤다. 이 밖에도 소득세와 법인세, 재산세, 주민세, 담배세 등 각종 세목의 세율이 오를 예정이다.
증세의 배경은 방위비를 대폭 늘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 관련 예산을 2027회계연도(2027년 4월∼2028년 3월)에 2%로 증액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방위비 약 43조 엔을 확보하기로 했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그중 일부를 증세로 조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증세에 대한 불만 여론이 거세다. 특히 일본 정부의 세금제도조사회가 기시다 총리에게 전달한 ‘중장기 세제개편안’이 공개되면서 불만이 폭증했다. 내용을 보면 직장인들의 각종 소득공제 폐지를 골자로 하며, 퇴직금에 대한 과세도 포함돼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기시다 정권이 월급쟁이 주머니를 털어간다” “연금이 줄어들지도 모르는데 퇴직금까지 손대겠다니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며 분통이 터져 나왔다.
여론이 악화되자 기시다 총리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서 직장인 증세를 부정했다. 하지만 “시간문제일 뿐 결국 실시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아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다. 여기에 설상가상 “일본 국회의원들의 올여름 보너스가 310만 엔(약 2800만 원)으로 역대 최고 금액을 경신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국민을 쥐어짤 게 아니라 국회의원부터 쥐어짜라. 이렇게까지 증세하지 않아도 충분한 재원 마련이 가능해진다” 등 비난이 속출했다.
#‘증세 안경’에 ‘선심성 안경’까지
이후 기시다 총리에게는 ‘증세 안경’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주니치신문에 따르면 “증세 안경이란 호칭은 7월부터 소셜미디어에 산발적으로 게재되다가 온라인커뮤니티 5ch에 게시물이 올라오면서 단번에 X(옛 트위터)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8월 25일에는 실시간 트렌드 10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주니치신문은 “절묘한 어감이 네티즌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배우 마쓰오 다카시는 8월 26일 “증세 안경이라는 적확한 별명을 붙인 사람의 공적을 찬양하며 건배한다”면서 그 센스를 칭찬했다. 저널리스트 야마지 도오루는 “실시간 트렌드를 보는 순간 ‘이제 안경에까지 과세하는 것인가’하고 초조해졌다. (그 사람은) 진짜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라고 썼다. “자신도 안경을 쓰고 있어서 새로운 세금이 부과될까 놀랐다”고 한다.
그간 기시다 정권의 정책에 쓴소리를 가해온 이즈미 후사오 전 아카시시 시장은 “나도 안경을 쓰고 있지만, 증세는 반대한다. 안경에는 죄가 없다”며 비꼬았다. 그 외에도 “증세 안경! 단박에 누군지 알게 만드는 네이밍 천재” “올해의 유행어 대상에 올려야 한다”며 동조하는 일본인들이 많았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게 총 76억 달러(약 10조 1500억 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8월 대규모 산불이 난 하와이 마우이섬에도 약 200만 달러의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해외에 자주 고액의 지원금을 표명하고 있다”면서 증세 안경에 이어 ‘선심성 안경’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한 네티즌은 “국가 예산이 부족해 증세한다면서 타국에는 76억 달러 지원이라니…. 지원은 여유 있는 나라가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얼마 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침체에 빠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대규모 감세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내에서는 “증세나 선심성이 아닌, 기시다 총리도 ‘감세 안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이어졌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검토하겠다”는 말을 자주 해 일본인들로부터 ‘검토사’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다.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비꼰 말이다. 지지율이 장기간 하락세인 기시다 총리에게는 증세 안경도, 검토사도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다.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이르면 9월 11일 개각과 당내 임원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과연 지지율 반전에 성공해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시다 지지율 회복세 ‘대체 왜?’ 의문의 목소리
일본 내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지난 5월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영향 등으로 한때 50%대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이후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정책 남발로 하락을 거듭해왔다. 8월 초 지지통신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6.6%를 기록해 ‘위험 지대’로 불리는 30%선을 밑돌기도 했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근소하지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9월 3일 발표된 JNN 여론조사에 의하면,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8월 조사 때보다 1.6%포인트 상승한 38.7%였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 방출에 대해서는 59%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일본 수산물을 전면 금수한 것이나 중국에서 장난 전화가 빗발친 데 대한 반발이 결과적으로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일본 인터넷상에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체 어디가 지지율 올라가는 요소가 있었나?” “38%나 지지한다는 데 굉장한 위화감을 느낀다” “투표를 통해 썩은 정치를 철퇴해야만 한다” 등등 지지율 회복세와 민생 체감은 아직도 차이가 있어 보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