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이 스스로를 ‘최강야구 감독’이라 소개할 때 전율”
‘최강야구’의 메인 PD이자 ‘최강 몬스터즈’ 단장을 맡은 장시원 PD는 이 상황에 대해 “마치 누군가가 나를 찍고 있는 듯했다”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돼 ‘트루먼 쇼’를 촬영하는 것처럼 시즌2의 흐름 자체가 반전 드라마였다고 회상했다.
채널A에서 ‘도시어부’ ‘강철부대’를 히트시킨 후 JTBC로 이적해 처음 만든 작품이 ‘최강야구’라고 말하는 장시원 PD.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최강야구’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본다.
―‘최강야구’를 어떻게 해서 기획했고, 만들어갔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부산 출신이라 어렸을 때부터 롯데 자이언츠 야구를 보고 자랐다. 당시 롯데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그 실망감을 다스리기 위해 2005년 미국 보스턴 팬웨이 파크 인근에 방을 얻어 야구장만 다녔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가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에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야구를 통해 즐겁고 행복해지는 기분을 보스턴 경기를 보며 느꼈다. 그때부터 야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채널A에서 ‘도시어부’가 히트작이 된 후 여러 군데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 마침 ‘최강야구’를 기획 중인 상황에서 JTBC가 손을 내밀었다. JTBC 이수영 대표가 열혈 야구팬이었다. 이수영 대표가 ‘최강야구’ 기획과 월요일 방송 조건을 수락해 JTBC에서 ‘최강야구’를 제작해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구상했던 선수단 구성과 시나리오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감독 김성근과 4번 타자 이승엽’이었다. ‘도시어부’ 촬영 때 인연이 깊어진 이경규 선배가 이승엽 감독의 인품이 좋다며 소개해줬다. 김성근 감독도 섭외하려고 하던 중에 당시 NPB 소프트뱅크 구단과의 계약 연장이 발표돼 이승엽 감독을 초대 감독으로 선임하는 걸로 방향을 수정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과 4번 타자 이승엽은 지금도 꿈꾸는 시나리오다.”
―은퇴 선수들을 섭외하는 과정이 어떠했나?
“섭외 과정에서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출연을 승낙한 선수들한테서 승부욕을 느꼈다. 섭외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고, 정성훈 정도만 고민 끝에 합류를 결정했다.”
―프로그램 초기 단계에서 시즌 규정(1시즌 30경기, 7할 승률, 10경기 기준 7할 미만 승률 시 선수 방출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만든 건가?
“혼자 결정했다. 최강 몬스터즈 팀에 대한 목표는 있어야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팀의 승률을 확인하니 대략 6할대 승률을 갖고 있더라. 프로그램 앞에 ‘최강’ 자가 붙는데 최강 팀 기준에 어울리기 위해선 승률 7할이 필요했다. 선수단이 한 주에 한 차례 녹화하게 되면 1년에 30경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산해보니 21승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30경기 21승, 10패면 폐지다.”
―그런 규정을 세운 걸 후회한 적은 없었나.
“2023년 시즌2가 방송되는 동안 ‘내 꾀에 내가 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시즌 10번째 경기가 방출 결정전, 20번째 경기가 방출 결정전, 30번째 경기가 폐지 결정전이었다. 짜고 하는 것이 아닌데 촌스러운 대본처럼 모두 들어맞았다. 내 뒤에 누군가 뛰어난 연출자가 있어서 나까지 찍고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었다. 마치 ‘트루먼 쇼’를 찍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 정도였다.”
장시원 PD는 지난 12월 초에 방송된 강릉영동대와의 1, 2차전 패배 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최강 몬스터즈는 강릉영동대전에서 져 시즌 9패째를 했고, 남은 2경기에서 모두 승리해야 시즌3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안타까운 결과에 절망했다.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수습해야 했던 장 PD는 김 감독에게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명대사 중 하나인 ‘관중은 감독 책임이지만 성적은 단장 책임이다’라는 내용을 전했다고 한다. PD 입장에선 극적으로 치닫는 상황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게 흥미로웠지만 최강 몬스터즈 단장으로선 프로그럠 존폐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10패를 하게 됐다면 ‘최강야구’는 무조건 폐지였나.
“30번째 경기인 연천 미라클 전을 앞두고 JTBC 대표님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내게 데스매치를 앞두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난 무조건 이길 거라고만 대답했다. 연천 미라클 전을 승리한 다음 마지막 경기인 엔드게임을 앞두고 다시 대표님의 전화를 받았다. 엔드게임에서 패하게 된다면 방송 클로징하기 전에 전화를 달라고, 폐지를 언급하기 전에 대표인 자신과 내가 JTBC 뉴스룸에 나가 대국민 사과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엔드게임에서 지면 폐지라고 말씀드렸다. ‘최강야구’ 스토리의 핵심은 진정성인데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하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모두 거짓말이 된다고 대답했다. 대표님이 “모든 결정을 장 PD 혼자서 결정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 뒤 엔드게임으로 치른 직관데이 최종전에 JTBC 임원진이 방문했다. 강릉영동대전부터 엔드게임까지 약 2주간 인생에서 정말 힘들었고, 스스로 겸손해지는 시간들이었다.”
―시즌3를 위해선 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것 같다.
“군산상일고전 이후 엔드게임까지 6경기 일정을 모두 확정 지었고 발표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내가 흔들릴 것 같았다.”
―이승엽 초대 감독이 두산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차기 사령탑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다. 김성근 감독은 어떻게 해서 섭외한 건가.
“PD의 관점에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춘 야구인이 필요했다. 당시 부산고와 부산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는 중이었는데 김성근 감독님이 일본 소프트뱅크 고문직에서 물러나 귀국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김성근 감독만이 ‘최강야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카드라고 생각했다. 부산 촬영을 마치고 메인 작가한테만 이 사실을 알린 다음 곧장 일본 후쿠오카로 날아갔다. 감독님 지인에게 식사 약속을 잡아 달라고 부탁해 직접 만났다. 처음엔 어렵다고 고사하셨는데 다음 날 아침 고민하겠다는 여지를 남기셨다. 마침내 2, 3일 후에서야 ‘오케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김성근 감독과의 야구 예능은 어려울 거라고 봤는데 진행하면서 힘든 점이 없었나.
“개인적으로 어려운 건 없었다. 오히려 야구인인 선수들이 감독님을 어려워했다. (이승엽 감독 때와는 다르게) 훈련을 정말 많이 했다. 훈련 촬영만 128회였다. 이렇게까지 많은 훈련을 진행하실 줄 몰랐다. 힘들어하실 감독님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나랑 메인 작가가 거의 모든 훈련에 참여해서 촬영했다. 감독님의 승부 근성,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점, 리더로서 감내해야 하는 부분 등을 공감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감독님은 야구가 삶인 분 아닌가.”
―김성근 감독과 함께 이대호의 합류도 상당히 큰 화제를 모았다. ‘최강야구’ 제작발표회 당시에도 “이대호 선수를 은퇴 후 영입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는데 현실로 이뤄졌다. 어떻게 이대호를 영입했나.
“(2022년) 부산고와의 원정 촬영이 끝난 다음 이대호 선수를 만났다. 이대호 선수가 흔쾌히 출연 승낙을 했고, 그 결과를 안고 후쿠오카로 김성근 감독님을 만나러 간 것이다. 김성근 감독님만 모신다면 ‘최강야구’는 계속 지속될 거란 확신이 생겼다. 후쿠오카에서 감독님을 만났을 때는 정말 간절했다.”
―이대호는 은퇴 전까지 롯데의 4번 타자로 활약했다. 그의 합류로 인해 전력이 너무 막강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투수라면 모를까 야구는 1명으로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최강 전력, 최강의 4번 타자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2023시즌 선수 구성과 출전 시간 배분 관련해서 아쉬움은 없었나.
“연출자가 현장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야구에서도 단장이 현장에 간섭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지 않나. 오히려 감독님이 그 점을 의식하셨는지 “(주변에서) 말이 많다”라고 하시더라. 선수들이 고르게 출전 시간을 확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경기 승리다. ‘최강야구’의 기획 자체가 ‘Win or Nothing’이었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감독님께 (능력을) 보여달라고 했다. 경기력으로 신뢰를 받는 건 아마추어나 프로야구 못지않게 ‘최강야구’도 똑같다.”
―최강 몬스터즈 선수단 구성에 아마추어 선수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영건즈’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은퇴 선수들만으로는 부족했다. 유격수 자원이 없어서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들을 혼합하는 구성을 생각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마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말이다. 그리고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결과물을 받았을 때 감동이 배가 됐다.”
장시원 피디는 지인 중에 딸이 원래 야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최강야구’를 통해 알게 된 윤영철(KIA)의 팬이 된 후 아빠와 야구 이야기를 나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야구를 몰랐던 사람들이 ‘최강야구’를 통해 야구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을 때 그 보람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여러 시구자들이 눈에 띄었는데 최근 메이저리거 김하성, 류현진이 시구자로 출연했다. 그들을 어떻게 해서 섭외한 건가.
“몬스터즈 선수들의 인연을 활용해 쉽게 섭외할 수 있었다. 김하성은 이택근과 친하고, 류현진은 송승준과 친하다. 전화 한 통에 모두 출연을 결정했다. 그만큼 ‘최강야구’를 좋게 봐줬다는 사실이 정말 고마웠다.”
―류현진의 경우 잠실야구장 마운드에 서 본 게 메이저리그 진출 후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도 류현진 선수 팬이라 그의 등장 자체가 신기했다. 편집할 때 등번호 99와 팀 로고가 보이게 CG도 사용하고 신경을 많이 썼다. 몬스터즈의 99번은 계속 비워두고 싶다. 단장으로서 PD로서 류현진 선수의 그림 자체가 정말 특별했다.”
―2024시즌을 앞두고 트라이아웃 일정을 공지했는데 모집 포지션이 투수, 내야수(3루수, 유격수), 외야수, 포수더라. 시즌3에는 선수단 변화의 폭이 크다고 예상해도 되나.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감독님과 레전드 선수들이 알아서 선발할 것이다. 나는 상황을 지켜보다 ‘정말 아쉽다’ 싶은 선수가 나오면 제작비를 더 사용하더라도 뽑을 예정이다. 방출 선수를 결정해야 하는데 마음이 약해진다. 냉정한 판단보다 자꾸 감정을 앞세우게 된다. 선수를 영입하면 내보내야 하는 선수들이 나올 텐데 그걸 결정하는 상황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2024시즌에는 외국인 선수의 활약이나 해외 경기도 기대하고 싶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경계는 없다. 좋은 선수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해외 경기 역시 가능하다.”
―2024년 시즌3의 주요 포인트가 무엇인가.
“최강 몬스터즈는 세월과의 싸움이다. 감독님도 마찬가지다. 제작진도 같은 야구를 어떻게 재미있게 표현할지가 중요하다. 나이를 먹으면 팀이 약해진다. 최강 몬스터즈에겐 세월이 가장 큰 적이다. 가끔 운명을 믿는 편인데 스스로 2024시즌이 라스트 댄스가 될 것인지를 묻곤 한다.”
―장시원 PD에게 ‘최강야구’란?
“삶의 전부다. PD와 단장 두 가지 업무를 동시에 하는데 점점 PD 마인드가 없어지고 팀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단장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진다. 제작자로서 제3자의 입장으로 바라봐야 하는데 실점할 때 분노하고 힘들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면서 즐겁다. ‘최강야구’도 좋지만 최강 몬스터즈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장시원 PD는 김성근 감독이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최강야구 감독 김성근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김 감독이 “7~8세 어린 아이가 날 알아보고 사인 요청했다”며 아이 같은 미소를 지을 때도 장 PD의 마음은 요동을 친다. 언제일진 몰라도 장 PD의 바람은 김성근 감독의 마지막이 박수로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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